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27일 "브레이크 성능이 뛰어나야 운전자가 안심하고 속도를 낼 수 있듯이 복지제도가 잘 설계돼야 경제성장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날 정두언 최고위원 등 한나라당 의원 11명이 국회에서 공동 주최한 '새로운 자본주의와 한국경제의 미래' 초청강연회에서 "과학도와 공학도들이 실직에 대한 불안을 버리고 공부해야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는데 직장이 불안하니까 기초과학을 포기하고 의대에 재입학하는 현상이 나타난다"며 "복지제도가 잘 디자인된 나라에선 우수 인력들이 실직에 대한 걱정 없이 더 진취적으로 직업 선택을 할 수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장 교수가 쓴 경제학서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는 최근 발간 한 달여 만에 2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다. 이날 강연회에는 이 같은 인기를 반영하듯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의 객석 400여개가 가득 찼다.

특히 전재희 이혜훈 서병수 김동성(이상 한나라당) 박병석 이용섭(민주당) 등 여야 의원 30여명이 참석해 질문을 하는 등 열띤 분위기였다. 의원들은 강연 후 장 교수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기도 했다.

장 교수는 이날 잘 정비된 복지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진정한 보수정당이라면 복지제도를 강화해 사회를 통합시키고 기존 체제를 강화하는 정도의 안목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참석한 여당 의원들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또 감세정책과 관련,단순히 세율을 낮추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세수를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낮은 세율이 무조건 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전제가 맞다면 아프리카 경제가 가장 잘돼야 한다"며 "스웨덴 독일 등 (기업이 투자하기 좋도록) 세금을 잘 쓰는 나라에 얻는 것이 있으니까 기업들이 몰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론자인 장 교수는 FTA와 관련해선 현장에서 참석 의원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정태근 한나라당 의원은 "내수성장의 한계에 봉착한 우리나라는 FTA를 통해 성장동력을 확보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장 교수는 "미국의 항공산업은 공군이,반도체산업은 해군이,생명공학 분야는 연구개발비의 30% 이상을 정부가 대고 있다"며 "(FTA를 통해)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것도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겠지만 우리가 직접적으로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맞섰다.

장 교수는 특히 FTA로 인해 금융파생상품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질 것을 우려했다. 그는 "현재 FTA 협약 내용들을 살펴보면 몇몇 규제 대상만 언급하고 나머지는 다 허용하는 포지티브식으로 돼 있다"며 "금융파생상품은 그 특성상 끊임없이 새로운 투자상품으로 발전하기 때문에 FTA 규제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