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인식 기술 개발 업체인 P사의 K사장은 한 달에 한두 번씩 서울지역 대학을 돌아다니며 이공계 교수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벌인다. 석 · 박사급 연구인력을 찾기 위해서다. 헤드헌팅 업체를 통한 채용에는 아예 기대를 접었다. 1년 넘게 인터넷에 공고를 냈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문에 혹시라도 중소기업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있을까 싶어 대학을 훑고 있는 것이다.

K사장뿐만 아니다. 최근 주요 대학 이공계 학과 교수실에는 연구 · 개발(R&D) 인력을 구하려는 중소기업 사장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산 · 학협력을 통해 같이 일했던 학생이나 연구원들을 끌어들이거나 교수를 설득하기 위해 각종 선물공세를 벌이는 경우도 많다. K사장은 "교수들과의 친분이 거래처 못지않게 중요해졌다"며 "실제 R&D를 하는 것보다 인력을 뽑는 게 더 어렵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의 석 · 박사급 인력난은 올 들어 경기가 회복세를 타면서 극심해지고 있다. 정보기술(IT)과 플랜트,자동차 업종의 대기업들이 일제히 R&D 투자 확대에 나서면서 중소기업의 석 · 박사급 인력을 싹쓸이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엔 연구원들의 몸값이 치솟아 이탈현상이 심해지고 이에 따라 R&D에 차질이 빚어지는 악순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한 산업용 모바일업체 사장은 "정부로부터 R&D 과제를 수주했지만 연구원들까지 빠져나가고 충원이 안되다보니 뒤늦게 프로젝트를 취소해야 했다"고 말했다. 상장기업들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기기 업체인 뷰웍스 관계자는 "R&D 인력을 뽑기 위해 최근 코스닥 기업 채용박람회에 나갔지만 이틀간 비관련 업종 전공자 3명이 다녀갔을 뿐"이라며 "R&D 인력난을 새삼 절감했다"고 말했다.

이보인 유튜에스 사장은 "중소기업 연구원들은 단순 연구 과제를 수행할 뿐 아니라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 만큼 능력이 돼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기업보다 고급인력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며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라고 설명했다. 이 사장의 말처럼 중소기업 석 · 박사 연구원 비중은 11월 현재 역대 최저 수준인 21.1%로 뚝 떨어졌다.

중소기업들은 특히 핵심 R&D인력인 7~10년차 중견 연구원들의 이탈이 잦아지면서 기술 노하우가 사라지고 성장을 위한 핵심기술 개발도 차질을 빚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기업 인사담당자나 경영진들은 연구인력 확보를 위한 아이디어를 짜내느라 고심하고 있다. LCD장비 업체인 동아엘텍은 수도권이라는 점을 활용해 지방 기업에 있는 지방대 출신 R&D 인력들을 포섭하고 있다.

남윤선/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