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매각 작업이 또다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채권단(주주협의회)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면서 `현대상선 경영권 보장 중재'라는 새 카드를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현대건설이 보유한 현대상선 지분(8.30%)을 시장이나 국민연금 등 제3자에게 분산매각하도록 해 현대그룹의 현대상선 경영권이 위협받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채권단의 중재안을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이 받아들이면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일사천리로 마무리될 수 있다.

채권단은 이번 주에라도 주주협의회를 소집해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고, 연내라도 양해각서(MOU)를 맺을 가능성도 있다.

채권단이 현재 바라는 `최상의 시나리오'인 셈이다.

현대그룹은 현대상선에 대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현대차그룹은 현대건설을 품에 안을 수 있으며 채권단은 5조1천억원이라는 매각 대금을 거둬들일 수 있기 때문. 또 현대건설은 이른 시일 안에 새 주인을 찾아 안정적인 경영을 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4자 모두에 이익이라는 게 채권단의 판단이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이 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현대차그룹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방안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채권단은 현대차그룹이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탈락하자 외환은행의 예금을 빼가는 등 실력 행사를 하고, 담당 임직원 3명까지 검찰에 고발하려는 등 채권단을 압박한데 대해 불쾌한 감정을 갖고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21일 "현대차그룹은 양보없이 혼자 독식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건설을 가져갈 수 있느냐는 결국 채권단의 손에 달렸기 때문에 현대차그룹은 중재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문제는 현대그룹이다.

현대그룹은 채권단의 제안에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상태다.

또 "최후의 보루인 사법부의 공명정대한 판단으로 현대그룹의 배타적 우선협상자의 지위가 재차 확인되길 희망한다"고 밝혀 끝까지 법적 대응에 나설 방침을 내비쳤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현대그룹으로서는 경영권 방어도 필요하지만, 현대그룹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으려면 현대건설 인수가 절실하기 때문에 중재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채권단은 현대그룹이 중재안을 수용하지 않더라도 현대차그룹에 현대건설을 매각하는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채권단으로서는 내놓을 카드를 다 내놓았기 때문에 현대그룹은 냉정하게 판단해서 받아들여야 한다"며 "만약 현대그룹이 수용하지 않는다면 그 상태로 절차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대차에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부여하는 안건은 채권단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통과된다.

하지만 현대그룹이 본격적인 소송전에 돌입할 경우 현대건설 매각 작업은 장기표류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특히 현대그룹이 법원에 제기한 MOU 해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상황은 좀 더 복잡해진다.

채권단은 이미 주주협의회에 MOU해지안을 가결하고, 주식매매계약 체결안을 부결해 MOU 해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판결에 관계없이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에 넘어가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아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법원이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다면 채권단은 현대그룹과 MOU 해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 본실사를 진행하고 주식매매계약 단계에서 과거 채권단 의결 결과를 들어 부결하는 절차를 밟게 될 가능성도 있다.

MOU해지 금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더라도 현대그룹이 양해각서 해지, 본계약체결 거부 무효소송 등을 추가로 내면 법원 판결에 따라 매각 향방은 또다시 달라질 수 있다.

키움증권의 한상준 애널리스트는 "현대그룹은 이번 우선협상자대상자 자격 박탈로 인해 강하게 반발할 것으로 보이며 법정 소송 등으로 현대건설의 주인 찾기에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서울연합뉴스) 윤선희 조재영 기자 indigo@yna.co.krfusionjc@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