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정치모임 카페지기가 종교에 대한 진실을 밝힌 책을 냈다하여 각 언론과 그 카페 회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다. 이미 세계 각국에서 출판된 바 있는 책으로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데, 사람들은 책의 내용보다 작가가 지지하는 정치인과 종교 간의 갈등에 더 관심 있어 하고 있다. 카페회원들 간에도 종교적 차이로 인해 지지와 반대파로 댓글이 나뉘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으로 타 종교에 대해 이를 강요하거나 지나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은 편애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종교의 기본정신은 ‘박애(博愛)’다. 편애(偏愛)가 아니라 널리 평등하게 사랑하라는 말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면 그것은 평등한 사랑이라고 할 수가 없다. 세상에는 티끌하나라도 그 존재 의미가 없는 것이 없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마음을 비우면 결코 치우침이 있을 수 없다.

세상은 부증불감(不增不減), 언제나 더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있는 그대로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자기가 보는 대로 보고 자기가 느끼는 대로 이해하려고 한다. 자기의 생각범위에서 그것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균형 잡힌 사고라면 건전한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편향된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비판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런 사람은 세상을 한쪽으로만 치우쳐 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 되는 것이다.

필자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이 ‘편(偏)’자 들어가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편견·편식·편애 등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생각이 한쪽으로 기울면 세상을 바로 볼 수 없고, 영양이 불균형하면 건강을 해치게 되고, 사랑이 불공평하면 다툼이 생기게 된다. 몸이 기울고 생각이 기울면 세상을 기울게 볼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이 편향된 사고를 갖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은 정상이고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삐딱하다고 말한다. 편향된 사고에 갇혀 버리면 제대로 된 생각과 사물이 보일 리 없다. 바른 생각을 가지고도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가 있는데, 하물며 편향된 사고를 갖고 있다면 사람들과의 불협화음은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지인인 사업가 K씨는 유난히 사람에 대한 편애가 심한 분으로 평소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술자리를 같이 하기로 유명했다. 좋아하는 사람과만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과만 얘기했다. 술을 마셔도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동석하면 그 자리가 파할 때까지 입을 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본인은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고 했다.

내성적인 성격도 문제가 되지만 그가 사람을 편애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믿고 거래한 사람에게서 큰 배신을 당해 사람을 좀처럼 믿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믿을만한 사람, 성향이 비슷한 사람과만 만나는 것이었다. 자연히 인맥이 제한적으로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기울었으니 그의 사업이 잘 될 수가 없었다. 열심히 뛰어 다니지만 사업이 더 뻗지 못하고 제자리걸음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한 가지 업종에만 종사하다 보니 아는 사람은 많지만 본인의 편애 경향 때문에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었다. 사업이란 때로는 적과도 거래를 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런 편협한 생각으로 사업을 한다면 성장의 한계가 있는 것이 당연했다.

“성격을 바꾸고 싶습니다.” K씨는 뒤늦은 후회를 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으니 한 쪽으로 쏠려 있던 인생의 저울을 균형 있고 바르게 고쳐보라고, 그리고 무엇이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고 했다. 그러면 잘 될 것이라고.

과유불급이라 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면 차라리 모자람만 못한 것이다. 사람일이 그렇고 세상일이 모두 그렇다. 허공에 금이 없고, 동서남북이 따로 없듯이 편을 세우지 말고 치우치지 마라. 세상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사람이 기울어져 있는 것이다. 세상 만물에 편자가 들어가게 되면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편(偏)을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세상을 그냥 편하게 바라보기 바란다.
(hooam.com/whoim.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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