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방송 '국민과의 대화'서 인종폭력 강경대처 강조 "러' 정보요원 팔아넘긴 배신자는 돼지만도 못해"

"러시아는 처음부터 다민족.다종교 국가로 출발했으며 우리는 모두 한 나라의 자손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가 16일 최근 수도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러시아 전역으로 번지고 있는 민족 갈등 문제와 관련, 서로 다른 민족과 인종 간의 이해와 관용을 촉구하고 나섰다.

푸틴 총리는 이날 TV와 라디오 방송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된 '국민과의 대화'에서 러시아인 프로축구클럽 팬이 남부 캅카스 지역 출신 청년의 총에 맞아 숨지면서 촉발된 민족 간 충돌 사태에 대해 언급하면서 "러시아는 처음부터 다민족.다종교 국가로 출발했으며 우리는 한 나라의 자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면서 "모두가 편안하게 느끼려면 그에 맞게 행동해야 한다"며 다른 민족과 종교.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촉구했다.

그는 캅카스인들의 횡포가 극에 달했다는 주장에 대해 "캅카스족이라는 민족은 따로 없다"고 지적하고 "모든 캅카스인들을 같은 색깔로 칠하려 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푸틴은 앞서 마네슈 광장에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대규모 폭력 시위가 일어난 원인에 대해 "이는 프로축구클럽 '스파르타크' 팬의 사망 때문이 아니라 이 사건에 대해 정부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그렇다고 이것이 법을 위반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며 정부는 폭력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11일 모스크바 크렘린궁 인근 마네슈 광장에서 약 5천 명의 러시아 민족주의자들과 축구팬들이 모스크바 출신의 동료 축구팬이 집단 패싸움 과정에서 캅카스 출신 청년이 쏜 총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며 대규모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후 소수민족에 대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의 테러가 이어져 최소 1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했다.

15일에도 양 진영 간에 크고 작은 충돌이 벌어져 모스크바에서 약 1천300명을 포함, 러시아 전역에서 1천700명이 체포됐다고 러시아 내무부가 밝혔다.

경찰은 모스크바 시내에만 약 4천 명의 병력을 배치해 폭력 사태 방지에 나서고 있다.

◇ "소련 시절의 배신자 암살 부서 사라져" = 옛 소련 정보기관 국가보안위원회(KGB) 요원 출신인 푸틴은 또 이날 '(러시아 정보 요원들을 팔아넘긴) 배신자를 제거하라는 명령을 내려야 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러시아 정보기관은 배신자들을 외국에서 살해하지 않으며, 그런 방법을 이용하지도 않는다"고 답했다.

지난 7월 미국에서 스파이 활동을 하다 적발돼 추방당한 러시아 정보요원들이 러시아 국내 정보기관 간부의 배신 때문에 붙잡힌 사실이 알려지면서 러 정보기관이 이 배신자를 응징하기 위해 암살단을 보냈다는 보도와 관련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푸틴은 "소련 시절과 스탈린 시대에 배신자를 처단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수부서가 있었다는 것은 비밀이 아니다"며 하지만 "이런 부서들은 이미 오래 전에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스파이 적발 사건과 관련, "정보요원들은 평생을 조국의 제단에 자신을 바치는 사람들이며 친척들과의 관계를 끊고 심지어 가까운 사람의 장례식에 오는 것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라고 평가하고 "이런 사람들을 배신한 짐승 같은 자가 나왔다. 그가 돼지가 아닌 이상 어떻게 자식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살겠는가"라고 반문했다.

◇ "도둑은 감옥에 가야 한다" = 푸틴 총리는 또 이날 한때 러시아 최대 석유재벌이었다가 탈세와 횡령 등의 혐의로 8년 형을 선고받고 수용생활을 하던 중 또 다른 혐의로 추가 기소된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사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호도로코프스키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할 때가 아닌가'라는 도발적 질문을 받고 "호도르코프스키는 상당한 액수의 돈을 횡령했다는 사실이 재판에서 증명됐다"며 "도둑은 교도소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호도르코프스키가 경영하던 석유 회사 '유코스'의 보안실 실장도 교도소에 있다"며 "그는 여러 사람들을 살해한 인물인데 그가 혼자서 그런 일을 했다고는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회 각계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호도르코프스키에게 관용을 베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 "러, 2012년에나 경제위기 탈출할 것" = 푸틴 총리는 러시아 경제 상황과 관련,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이 3.8% 수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며 "국제금융위기의 여파로 마이너스 7.9% 성장을 했던 지난해와 비교하면 전반적으로 올해를 만족스럽게 끝내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그는 그러나 "러시아 경제가 위기 이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는 것은 대통령 선거가 예정된 2012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푸틴은 2000년 대통령에 취임 한 이후 거의 매년 '국민과의 대화'를 지속해 오고 있다.

2008년 총리 취임 이후 3회째, 전체 9회째를 맞은 올해 '국민과의 대화'는 4시간 26분 동안이나 지속돼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푸틴은 전화나 핸드폰 문자, 인터넷 등으로 실시간 접수된 2백만여 개의 질문 가운데 90개에 답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유철종 특파원 cjyou@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