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에 도장 찍으며 관리하는 임원이 아닌 실전을 누비는 전문가로 활약해 달라."

최지성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이 8일 승진한 임원들과의 면담에서 당부한 내용이다. 급변하는 정보기술(IT) 빅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임원들이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현장을 누비는 전문가로 활약해야 한다는 게 최 부회장의 생각이다.

◆'디자인 삼성' 강조하는 30대 임원 발탁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30대 디자이너 등 젊은 인재들의 약진이다. 오너 일가 외에 30대 임원이 나오기는 극히 이례적이다. 삼성이 5년 연속 세계 TV 시장에서 1위를 지키고,부진에 빠졌던 스마트폰 사업을 반전시킨 갤럭시S의 성과 등이 모두 디자인 혁신에서 출발했다는 평가가 작용했다.

이민혁 삼성전자 수석(38)은 승진 연한에 비해 4년 일찍 상무로 승진,올 승진자 가운데 최연소 타이틀을 달았다. 갤럭시S 등 스마트폰 디자인 부문에서 탁월한 성과를 낸 게 발탁 배경이다. 이 수석은 인사 발표 후 가진 전화 인터뷰에서 "아직은 얼떨떨하다"며 "회사가 바라는 임원의 역할이 관리자에서 전문가로 바뀐 만큼 다양성이 강조되는 디자인 현장을 직접 발로 뛸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삼성전자 TV 디자인 혁신을 주도한 양준호 수석(39)도 30대 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양 수석은 2006년 보르도TV로 시작해 올해 3차원(3D) LED(발광다이오드) TV까지 삼성 TV의 프리미엄 이미지 구축에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전사 물류시스템 혁신에 기여한 KAIST 산업공학 박사 출신의 문성우 삼성전자 부장(39)도 상무로 승진했다.

◆여성과 외국인 승진도 두드러져

여성 승진자 수는 지난해 6명에서 올해 7명으로 늘었다. 특히 여성 엔지니어들이 중용됐다. 삼성전자는 여성 최초로 교육과학기술부 주관 '이달의 엔지니어상'을 수상한 박희선 부장과 LED TV 슬림화를 주도한 송영란 부장 등 2명의 엔지니어를 상무로 승진시켰다. 김유미 삼성SDI 상무는 전무에 올랐으며 이지원(삼성SDI) 김영주(삼성SDS) 이재경(삼성증권) 부장이 새로 임원 대열에 합류했다.

해외 현지법인의 영업을 맡아온 '파란눈 삼성맨'들의 약진도 주목된다. 지난해(3명)보다 두배 이상 많은 7명이 본사 정규 임원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미국 휴대전화법인에서 매출 확대에 기여한 오마르 칸과 HP 델 애플 등 반도체 대형 거래선을 확대한 미국 반도체법인의 존 세라토,중국법인에서 유럽이동통신방식(GSM) 휴대폰 점유율을 대폭 끌어올린 러자밍 등이 상무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베이징통신연구소장인 왕퉁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다.

◆파워블로거 등 독특한 이력도 눈길

삼성그룹 최고 권위의 상인 '자랑스런 삼성인상' 수상자들이 대거 발탁되는 등 '성과 있는 곳에 승진 있다'는 인사원칙이 재입증됐다. 노태문 삼성전자 상무(갤럭시S 개발 담당)와 윤종식 상무(32나노 모바일 프로세서 개발),남효학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상무(고기능 OLED 성공적 양산),전광용 삼성엔지니어링 상무(UAE 45억달러 공사 수주)가 각각 전무로 승진했으며,이태우 삼성전자 부장(D램 누적수율 91% 달성)은 신규 임원이 됐다. 삼성전자는 올해 수상자 5명을 모두 승진시켜 성과주의를 강조했다.

부사장급 고위 임원에서는 글로벌 현장을 누비며 사상 최대 매출 및 실적을 견인한 영업 · 마케팅에서 많은 승진자가 나왔다. 삼성전자는 반도체,영상사업,무선사업부의 전략마케팅장을 맡아온 김광현 전무,김양규 전무,이돈주 전무를 모두 부사장으로 발탁했다.

박재현 삼성전자 상무는 한컴씽크프리 최고기술임원(CTO)과 벤처업체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뒤 지난해 입사했으며,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인터넷 트렌드와 웹오피스 소프트웨어 정보를 소개하는 파워블로거로도 유명하다.

김태훈 기자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