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법 개정안은 예산안 못지않게 연말 국회에서 여야 간 줄다리기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단골 메뉴다. 내년 세수 예산을 확정하려면 세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하는 만큼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작년에는 예산안이 여야 대치로 12월 마지막날 통과됐다. 세법 개정안도 덩달아 늦게 처리됐다. 국회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올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 세제개편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막바지로 향하고 있으나 정부가 넘긴 100여건의 세법 개정안 중 쟁점 법안은 전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감세 논쟁의 핵심인 소득세 · 법인세 감세 철회,임시투자세액공제 폐지,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미술품 양도소득세 과세 등이 대표적이다.

◆소득세 · 법인세 인하 분리 처리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3일 조세소위를 열어 이들 쟁점 법안을 놓고 집중 논의를 벌였다. 하지만 여야 간 입장 차만 확인하고 좀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야의 간극이 가장 큰 것은 소득세 · 법인세 인하 철회 여부다. 국회는 지난해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 구간(각각 과세표준 8800만원,2억원 초과분)에 대한 세율 인하(소득세는 35%→33%,법인세는 22%→20%)를 2년 유예해 2012년부터 적용하는 내용의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올해 야당을 중심으로 소득세 · 법인세 인하를 아예 없었던 것으로 하자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날 조세소위에서 유일호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한 여당 의원들은 "어차피 2012년에 적용하는 법안인 만큼 내년에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이번 회기 안건에서 제외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맞서 야당 의원들은 재정건전성 등을 이유로 '철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재정위 내부에서는 막판까지 타협이 안 될 경우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분리 처리하는 쪽으로 절충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인세는 예정대로 인하하고 소득세는 최고 구간을 추가 신설해 최고 세율을 적용하는 식이다. 소득세 과표 1억원 또는 1억2000만원 초과 구간을 신설,35%의 세율을 적용하자는 안은 의원입법 형태로 이미 제출돼 있다.

◆임투세액공제는 부분 유지

기업들의 설비투자액 중 일부를 이듬해 법인세에서 공제해주는 혜택을 폐지하고 고용창출형 세액공제로 전환하자는 정부안에 대해선 여야 입장이 뒤바뀌었다. 여당이 반대하고 야당은 정부안대로 밀어붙이자는 것이다. 이날 조세소위에서도 여당은 "한꺼번에 없앨 경우 기업들의 투자 위축을 초래하므로 점진적으로 없애는 것이 맞다"고 주장한 반면 야당은 "곧바로 폐지해야 한다"고 맞섰다.

하지만 임투세 폐지와 관련,여당 내부에서 대기업은 예정대로 폐지하고 중소기업에 한해 공제율을 3%에서 7%로 높여 연장 적용하자는 절충안이 나오고 있어 야당이 반대하지 않을 경우 타협할 가능성이 있다.

외국인 채권 투자 과세는 국고채 통안채 등 외국인 채권 투자에 대한 이자소득(14%)과 양도소득(20%)의 소득 · 법인세 원천징수를 부활하자는 것으로 강길부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탄력세율 법안이 정부의 지지 속에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조세소위 의원 일부는 탄력세율을 도입할 경우 정부에 지나친 재량권을 주게 되고,자칫 국내 투자자들과의 역차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을 들어 동일 세율 과세를 주장하고 있다.

6000만원 이상의 고가 미술품(작고한 작가의 작품) 거래 시 양도소득세(20%)를 물리는 정부안은 이날 조세소위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기타 세법안은 일괄처리

이 밖에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고소득자에 대한 세무검증제도,외국인의 유흥주점 이용시 과세,다자녀 추가공제 확대 등도 관련 이익단체 반발에다 여야 간 입장이 약간씩 엇갈려 추가로 논의해야 한다.

논란이 됐던 부가가치세 과세대상 범위에는 △쌍꺼풀,주름살 제거 등 미용목적의 성형수술 △애완동물 진료용역(가축 및 수산동물 제외) 등을 포함시키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했다. 자동차운전면허학원은 1년간 부가가치세 과세를 유예시킨 뒤 추후 재논의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기업도시 감면 대상 기업 확대,창업중소기업 등에 대한 세액 감면 대상 확대,해외 금융계좌 신고의무제 등 이미 여야 간 합의한 세법 개정안도 다시 논의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정종태/박신영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