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경술국치 100년…"고종은 독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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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태자 1,2,3 | 송우혜 지음 | 푸른역사
| 1권 362쪽·1만3600원, 2권 392쪽·1만4800원, 3권 364쪽·1만4300원
| 1권 362쪽·1만3600원, 2권 392쪽·1만4800원, 3권 364쪽·1만4300원
소설가이자 사학자인 송우혜씨가 쓴 이 책은 모두 세 권이다. 1권은 《못생긴 엄상궁의 천하》, 2권은 《황태자의 동경 인질살이》, 3권은 《왕세자의 혼혈결혼 비밀》이다. 그런데 영화로 치면 등장인물이 다 조연급이다. 못생긴 엄상궁하며 비운의 황태자 이은,그리고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인물만 보면 이들은 명성황후나 고종,그리고 메이지 일왕에게 밀린다. 그럼에도 이들은 적어도 이 책에서만큼은 당당히 주연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조연이 스토리를 꿰차고 이끌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패권을 논할 때 한니발보다 이제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먼저 언급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중국 역사에서도 이런 예는 숱하게 많다.
조연을 통해 조망하는 방식은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화되고 덧칠되는 주인공과 달리 이들의 스토리에는 과장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대한제국의 역사를 말할 때 명성황후나 고종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물밑에서 갈퀴를 휘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본 역사적 사실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다"라고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이 시점에서 적절하다.
먼저 엄상궁을 보자.엄상궁을 단순히 이은의 생모로만 본다면 오산이다. 못생겼던 엄상궁의 승은은 그 당시에도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배포와 총명함으로 고종을 보위하면서 궁궐 안팎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에 따르면 엄상궁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 새로 간택된 정화당 김씨와 친일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그의 지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더 들려준다. 먼저 고종의 독살설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통설과 달리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일본이 고종을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을 파리강화회의에서 활용해 한일병합을 만천하에 알릴 계획이었다는 것.이은의 결혼 소식에 충격 받아 고종이 붕어했다는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시의의 독약 살포 혐의도 자연스레 벗겨져야 한다.
황태자 이은의 약혼녀였던 민갑완에 관한 진실게임도 재미있다. '고종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 등의 사료를 뒤져가며 저자가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그가 간택 대상자 7인의 명단에 아예 없었는데 엄상궁이 각 가문의 위상과 영항력을 감안해 약혼녀로 둔갑시켰다는 것.난세의 복잡하고 기괴한 일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저자는 주목한다.
만약 영친왕 이은의 학교 성적이 나빴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순종실록' 부록에서 이은이 일본에 끌려가 공부할 때 거둔 우수한 학업 성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너무나 신선해 연구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단순하지만 이 모티브가 저자를 10년 동안 이 책에 몰두하게 만든 이유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돼 있지만 완결편인 4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소설가인 저자의 역사적 식견은 익히 알려진 바다. 저자는 객관적 팩트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소설적 구성을 가미했다고 밝혔다. 최근 황석영이 내놓은 《강남몽》처럼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은 이른바 다큐소설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의 트라우마는 덮어둔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금 직시하는 것이다. 마음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의 이야기인 세 권의 책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상할 것도 없다. 조연이 스토리를 꿰차고 이끌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패권을 논할 때 한니발보다 이제는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먼저 언급되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중국 역사에서도 이런 예는 숱하게 많다.
조연을 통해 조망하는 방식은 나름대로 미덕이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화되고 덧칠되는 주인공과 달리 이들의 스토리에는 과장이 없기 때문이다. 가령 대한제국의 역사를 말할 때 명성황후나 고종에게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그들을 뒤에서 조종하고 물밑에서 갈퀴를 휘젓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울 수 있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본 역사적 사실은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기억하는 것만이 역사다"라고 했던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 이 시점에서 적절하다.
먼저 엄상궁을 보자.엄상궁을 단순히 이은의 생모로만 본다면 오산이다. 못생겼던 엄상궁의 승은은 그 당시에도 믿기 힘든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는 타고난 배포와 총명함으로 고종을 보위하면서 궁궐 안팎에서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뿐만 아니라 저자에 따르면 엄상궁은 아관파천의 주역이었다. 새로 간택된 정화당 김씨와 친일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그의 지략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저자는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더 들려준다. 먼저 고종의 독살설이다. 저자는 지금까지 알려진 통설과 달리 당시 상황으로 봤을 때 일본이 고종을 독살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은과 이방자의 결혼을 파리강화회의에서 활용해 한일병합을 만천하에 알릴 계획이었다는 것.이은의 결혼 소식에 충격 받아 고종이 붕어했다는 저자의 주장대로라면 시의의 독약 살포 혐의도 자연스레 벗겨져야 한다.
황태자 이은의 약혼녀였던 민갑완에 관한 진실게임도 재미있다. '고종실록''승정원일기''일성록' 등의 사료를 뒤져가며 저자가 밝혀낸 사실은 이렇다. 그가 간택 대상자 7인의 명단에 아예 없었는데 엄상궁이 각 가문의 위상과 영항력을 감안해 약혼녀로 둔갑시켰다는 것.난세의 복잡하고 기괴한 일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저자는 주목한다.
만약 영친왕 이은의 학교 성적이 나빴다면 이 책은 출간되지 못했을 것이다. 저자가 서두에서 밝혔듯이 '순종실록' 부록에서 이은이 일본에 끌려가 공부할 때 거둔 우수한 학업 성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읽고 너무나 신선해 연구를 하게 됐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단순하지만 이 모티브가 저자를 10년 동안 이 책에 몰두하게 만든 이유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돼 있지만 완결편인 4권은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
소설가인 저자의 역사적 식견은 익히 알려진 바다. 저자는 객관적 팩트만으로 감당할 수 없는 부분에 소설적 구성을 가미했다고 밝혔다. 최근 황석영이 내놓은 《강남몽》처럼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은 이른바 다큐소설이다.
올해는 경술국치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역사의 트라우마는 덮어둔다고 치유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자화상을 다시금 직시하는 것이다. 마음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낸 대한제국 황실 사람들의 이야기인 세 권의 책이 주는 의미가 남다른 이유다.
전장석 기자 sak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