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중국 일본 독일 등 대표적인 무역 흑자국의 정책금융기관 대표들이 22일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경제신문과 한국정책금융공사가 이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개최한 '정책금융 글로벌 포럼'에서 4개국 대표는 기존 정부 주도의 개발금융(development finance)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인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정책금융으로 업그레이드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날 포럼에는 유재한 한국정책금융공사(KoFC) 사장,우베 올스 독일재건은행(KfW) 부행장,류헤이 가쓰노 일본정책금융공사(JFC) 전무,가오쥐안 중국국가개발은행(CDB) 부행장 등이 참석해 정책금융의 현황과 향후 과제 등을 논의했다.


◆금융위기 이후 정책금융 역할 커져

올스 부행장은 "금융위기 이후 KfW의 역할은 더욱 강화됐다"며 "정보의 비대칭성과 외부효과 등으로 인한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시장 촉진제(market facilitor)로서 정책금융기관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기업대출이 전년보다 40% 늘어난 238억유로를 기록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가쓰노 전무도 "JFC의 대출 잔액이 2008년 3분기 1조3700억엔에서 2009년 2분기 2조5050억엔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며 "리먼 브러더스 쇼크 이후 기업들의 자금수요가 크게 늘어난 탓"이라고 설명했다. 가오 부행장은 "아직 개발도상국 단계에 있는 중국은 정책금융 분야에 있어서 여전히 배워야 할 게 많은 학생 입장"이라며 "지금까지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다"고 밝혔다.

◆정책금융 3대 과제는

정책금융이 앞으로 해야 할 주요 과제에 대한 각국 대표들의 견해는 일치했다. 중소기업 지원,신성장동력 발굴,녹색성장 등 세 가지로 압축됐다.

먼저 중소기업 지원은 일자리 창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책금융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과제로 꼽혔다. 올스 부행장은 "전체 일자리의 70%가 중소기업에서 창출되고 있다"며 "중소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은행들로부터 자금을 차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정책금융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가쓰노 전무도 "전체 420여만개 일본 기업 중 중소기업이 419만개로 99.7%를 차지하고 있다"며 "고용 측면에서도 전체 4012만명 취업자 가운데 69%인 2783만명이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교세라 일본전산 등 대기업들도 과거 중소기업일 때 정책금융을 지원받아 성장한 사례"라고 덧붙였다.

신성장동력 발굴과 녹색성장 등도 정책금융의 주요 과제로 지적됐다. 올스 부행장은 "신사업 발굴 등과 같은 분야는 초기 투자비용이 많은 데다 리스크가 커 시장에 맡겨둘 경우 저투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신재생에너지,에너지 효율화 등과 같은 녹색성장도 수익성이 낮아 정책금융이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지적했다.

◆정책금융기관 간 글로벌 협력은 필수

이 같은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협력이 필수라고 각국 대표들은 강조했다. 류헤이 전무는 "이들 과제는 어느 한 나라 차원에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각국 정부 및 정책금융기관들이 서로 긴밀한 협조를 통해 큰 그림을 그려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오 부행장도 "CDB는 유엔기후변화 협약에 중국 최초로 가입한 은행"이라며 "기후변화와 빈곤퇴치 등 글로벌 과제에 대해 KfW를 비롯한 정책금융기관과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한 · 중 · 일 · 독 나라별 정책금융 현황은

나라별로 정책금융은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였다. 특히 KfW는 독일 통일 이후 옛 동독의 재건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다. 올스 부행장은 이와 관련,"독일 통일 이후 지금까지 옛 동독 지역에 1620억유로를 지원했다"며 "특히 사회간접자본 개발 및 6500여 옛 동독지역 중소기업에 자금 지원 등으로 250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마셜 플랜에 따른 전후 서독 복구 경험이 동독 개발에도 그대로 적용됐다"며 "이 같은 경험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되기는 어렵겠지만 상당한 참고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CDB는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서부대개발 및 도시화 작업에 역점을 두고 있었다. 가오 부행장은 "대부분 재정이 취약한 지방정부에 대한 직접 지원을 통해 경제성장을 도모하고 있다"며 "중서부 지역 비중이 44%에 이를 만큼 낙후지역 개발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KfW는 우리나라의 수출입은행과 비슷한 조직(IPECS)을 산하에 두고 있는 게 특징이며 JFC는 2008년 분야별로 정책금융 기능을 맡고 있던 4개 기관을 통합시켜 탄생했다. 온렌딩 대출을 통해 상업은행과의 경쟁을 피하고 있는 KfW나 KoFC와는 달리 JFC는 중소기업에 대한 직접대출 비중이 높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