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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사 뒤집어 읽기] '대부업자' 샤일록은 악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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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리대금업과 경제

    중세 종교적 이유로 고리대금업 탄압…돈 흐름 끊어져 시민 봉기 일어나
    "너는 그에게 이자를 위하여 돈을 꾸어주지 말고 이익을 위하여 네 양식을 꾸어주지 말라."(구약 레위기 25;37) "오 믿는 자여,두 배 또 두 배로 지나치게 탐욕을 부리지 말라."(코란 3;130)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신약 누가 6;35)

    고리대금업(usury)에 대해서는 어느 종교,어느 문명권도 관대하지 않았다. 고리대금은 경제적 약자를 착취하는 방식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원래 'usury'라는 말은 꼭 폭리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이자율의 고하와 상관없이 모든 이자를 가리켰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아예 이자를 받는 게 금지돼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로마법에는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는 것이 허용됐지만 중세 이후 다시 금지됐다. 교회는 아주 초기부터 이자 수취를 금지하고(예컨대 314년의 아를 공의회나 325년 니케아 공의회) 세속 지도자들에게 이를 지키라고 강요했다. 그렇지만 황제나 국왕들은 로마시대 이래 지속돼 왔고 실제 상거래에서 행해지는 이자 거래를 당장 중단시키지 않고 어느 정도 묵인했다.

    이자를 둘러싼 갈등이 재연된 것은 12~13세기에 상업이 크게 성장한 이후다. 3차 라테란 공의회(1179)와 2차 리용 공의회(1274)는 고리대금업자가 그동안 받은 이자를 전부 되돌려주지 않는 한 종부성사,매장,유언장 작성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결정했으며,나아가 비엔 공의회(1311)는 고리대금업이 죄가 아니라는 주장은 이단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종교적으로 보면 어떨지 몰라도 실제 경제에서 이자 없이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정말로 이자 지불을 전면 금지시키면 대금업이 사라질 테고 그러면 경제적 파국이 일어날 게 분명하다. 중세에는 가난한 서민들로부터 국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대부에 의존해 살았다. 심지어는 교회도 성당 증축을 위해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는 게 현실이었다.

    고리대금업자라고 하면 샤일록 같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악랄한 유대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유대인들이 꼭 대부업에만 종사한 것도 아니고 모든 대부업자가 유대인이었던 것도 아니지만,유대인들이 경제적 후진 지역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액을 대출해주는 역할을 많이 했던 것은 분명하다.

    사실 유대교에서도 이자를 받고 돈을 꿔주는 것은 금지돼 있지만,그래도 빠져 나갈 구멍이 있었으니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신명기 23;20)는 구약 성경의 구절이 그것이다. 이방인에게는 이자 수수가 가능하다는 해석인 것이다.

    이런 일을 하며 유대인들은 엄청난 폭리를 취한 것일까. 이 문제와 관련해서 프랑스의 사례는 아주 흥미로운 사실들을 보여준다. 필립 미려왕(美麗王 · 얼굴이 잘 생겨서 이렇게 불린다)이 유대인들을 추방하고 그들의 재산과 채권을 몰수했을 때 파리의 연대기 작가인 제프루아는 이런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 기독교도들보다 유대인들이 사업을 할 때 훨씬 너그러웠다. 유대인들이 프랑스에 남아 있었다면 기독교도들이 더 큰 도움을 받았을 것이다. 돈을 빌려줄 사람을 찾을 수 없으니 오히려 모두 더 큰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 '

    대금업이 필수불가결한 것이며 이자 수수가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깨달은 필립 왕은 1311년 처음으로 '저리'의 이자 수수를 공식 인정했고,연 20%를 이자 상한선으로 정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는 그동안 지나치게 높은 이자를 받았던 이탈리아 출신의 '기독교도' 고리대금업자들,일명 롬바르디아인들이 축출됐다. 그러나 롬바르디아인들 역시 조만간 다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고리대금업을 억제하는 종교적 요구와 이자 수수가 불가피하다는 경제적 요구 사이에 균형을 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1360년에 유대인들을 용인하는 조치를 취했다가 1394년에 다시 축출하는 혼란스러운 정부 조치를 보면 알 수 있다.

    부채 문제가 심각해져 파리 시민들이 1306년과 1356년 두 차례 봉기를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렀다. 종교와 경제의 상반된 요구를 모두 충족시켜야 하는 난제를 어떻게 풀 수 있을 것인가. 국왕의 자문관들은 일종의 '미소금융' 안을 생각해냈다. 개인 대부업자 대신 공공은행이 서민들에게 저리로 대출해주자는 것이다.

    1380년대 필립 드 메지에르라는 국왕 자문관은 국왕의 자본으로 공공은행을 설립해 각 시의 지점에서 서민들에게 돈을 빌려주고,1년 뒤에 돈을 환수할 때 추가로 10%의 '적선'을 받아 자본금을 늘려 나가자는 진전된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런 안들을 실행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결국 중세의 '미소금융'은 아이디어에 그치고 말았다.

    국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채무 지불을 유예해주는 정도에 그쳤다. 국왕에게 탄원을 한 사람 중 사정을 감안해 1년,2년,3년 혹은 5년 동안 지불 기간을 연장해주는 '유예허가서'를 발행했다. 이런 특권을 인정받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그래도 과거 루이 9세(십자군에 참여해 성인 시성을 받은 왕) 시대처럼 채무 지불 유예자의 '십자군 원정 참전 의무'와 같은 조건은 달려 있지 않았다.

    국왕 휘하 군인들과 상인들,서민들은 자신의 채무 상태가 전쟁이나 자연재해처럼 불가피한 상황 때문이지 자신의 잘못된 자산관리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증명하고 유예 특권을 누렸다. 아주 천천히 경제는 종교적 통제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주경철 <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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