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아'로 염색하고,'케라스타즈'로 머리를 감는다. '더바디샵'으로 샤워하고 '키엘'로 기초 화장,'랑콤'으로 색조 화장을 한 뒤 '메이블린뉴욕' 마스카라로 마무리한다. '슈에무라'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지우고 '에씨' 매니큐어를 바른다. 로레알그룹 제품들로 이렇게 하루의 단장을 시작해 마무리지을 수 있다.

로레알은 세계 화장품 시장의 약 15%를 장악하고 있는 세계 최대 화장품 그룹이다. 연 매출이 5000만유로가 넘는 인터내셔널 브랜드만 23개로 130개국에 제품을 수출한다. 1909년 창립된 로레알의 매출은 2005년 145억3300만유로,2007년엔 170억6300만유로에 이어 지난해 174억7300만유로를 기록했다. 파트리샤 피노 로레알 커뮤니케이션 부문장은 "화장품은 공급자가 시장을 주도한다는 게 특징"이라며 "기존 수요에만 의존해 혁신적인 신제품을 내놓지 않으면 발전하지 못한다"고 업종환경을 요약했다.

◆보유 특허만 674건

프랑스 오네(Aulnay)의 로레알 연구소.한 연구원이 비커에 든 용액을 샬레(실험용 접시)에 덜어놓으니 곧 젤이 됐다가 딱딱하게 굳었다. 2008년 개발한 모발의 경도(hardness)를 높여주는 특허 성분 '인트라실란'이다.
로레알의 최대 강점은 지속적인 연구 · 개발(R&D)로 혁신적인 제품을 내놓는 것이다. 그동안 5명의 최고경영자(CEO) 중 세계 최초 염모제(머리 염색제)를 개발한 화학자 유젠 수엘러(창립자)와 샤를르 즈비악(3대 CEO) 등 2명이 R&D 부문 출신이다. 로레알은 30개 전문 분야,60개국 출신의 연구원 3300여명을 보유했고 전 세계 18개 연구소에서 매년 5000여개의 포뮬라(원재료 배합 물질)를 개발한다. 피노 부문장은 "로레알은 매년 매출의 약 3.5%를 연구에 투자한다"며 "R&D 인력 수와 마케팅 인력 수가 거의 비슷할 정도로 연구원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제껏 취득한 특허는 674건에 이른다. '아미넥실'은 탈모의 원인인 콜라겐 경화를 막아주며 '세라마이드 R'은 모발 세포의 간극을 메운다. '프록실린'은 피부 표피의 응집력을 개선해 노화를 막는다. 피노 부문장은 "지난해 경기 침체에도 6억유로를 연구에 투자, 무(無)암모니아 염색제 '이노아'와 피부 노화를 방지하는 '랑콤 제니피크'를 성공적으로 론칭했다"고 설명했다.

◆브라질 시장을 뒤흔든 '현지화'

로레알의 글로벌 전략 키워드는 '지질학(geology)'과 '화장품(cosmetics)'을 결합한 '지오코스메틱(geocosmetics)'으로 요약된다. 18개 연구소 외에 한국 독일 인도 브라질 등에 특정 지역 인구의 건강 · 미용습관과 화장품 수요 등을 연구하는 평가센터 13개를 운영하고 있다. 로레알 관계자는 "전 세계 여성 3500명의 피부색을 측정하고 63종의 피부톤을 파악해 제품 개발에 연결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로레알파리는 브라질 여성들이 헤어컨디셔너를 씻어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정전기를 방지하면서도 가벼운 머릿결을 만들어 주는 '엘비베 리스 인텐스 익스트림'을 개발했다.

아시아에 진입한 지는 1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3위로 올라섰고,5년 내 아시아 지역에서 화장품 1위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랑콤 '이드라젠 뉴로캄 젤 에센스'는 수분 공급을 중시하는 한국 여성을 위해 국내에서 출시한 뒤 아시아 지역에 선보였고,메이블린뉴욕 '볼륨 익스프레스 하이퍼컬'은 볼륨과 컬링을 잡아주는 아시아 여성만을 위해 출시된 마스카라다.

알렉상드르 체베리코브 로레알코리아 전무는 "한국 소비자들은 취향이 매우 정교하고 패션을 '쓰나미'처럼 빠르게 받아들이는 데다,'한류'를 통해 유행을 아시아 전역에 전파한다"며 "로레알은 한국을 10대 전략국으로 설정했다"고 말했다.

◆'화장품업계의 칭기즈칸'

연 매출 5000만유로를 넘는 인터내셔널 브랜드 23개 가운데 로레알에서 직접 론칭한 브랜드는 '로레알프로페셔널' '로레알파리' '케라스타즈' '이네오브' 등 4개뿐이다. 나머지 19개는 인수 · 합병(M&A)을 통해 인수한 브랜드들이다. 랑콤(프랑스 · 1964년)은 인수 후 '압솔뤼 크림'을 선보여 마니아층을 형성,화장품 업계 선두주자로 뛰어올랐고 비오템(프랑스 · 1970년) 인수를 통해 온천수에 함유된 플랑크톤으로 제품을 만드는 기술을 획득했다. '헬레나 루빈스타인'(미국 · 1989년),'레드켄'(미국 · 1993년),'더바디샵'(영국 · 2006년),'이브생로랑 보떼'(프랑스 · 2008년) 등 브랜드를 인수했다.

피노 부문장은 "천연성분 화장품 회사 '사노플로르'는 프랑스에서만 판매하지만 이를 통해 전문적인 천연 화장품 제조기술을 습득할 수 있었고,유럽에 비해 매니큐어 시장이 발달한 미국에서 '에씨'를 인수해 매니큐어 브랜드를 갖게 됐다"며 "독보적인 기술과 잠재력이 있으면서도 기존 로레알 브랜드 목록과 겹치지 않는 브랜드들을 잇따라 M&A하면서 로레알은 세계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끌어주고 밀어주는' 젊은 인재경영

장폴 아공 로레알그룹 최고경영자(CEO · 54)는 1979년 로레알그룹에 인턴으로 입사해 2년 만에 그리스 지사장으로 발령받았다. 이후 비오템 인터내셔널 매니징 디렉터,로레알독일 매니징 디렉터,로레알아시아존 매니징 디렉터,로레알미국 매니징 디렉터를 두루 거쳐 2006년 50세에 그룹 CEO에 올랐다. 로레알 관계자는 "젊은 인재를 키우기 때문에 업계에선 '낭떠러지에 떨어뜨린 뒤 스스로 올라오게 만드는 문화'라고 불리기도 한다"고 전했다.

여성인력을 적극 채용하고 남녀에게 평등한 기회를 준다. 110개 국적의 6만4600여 임직원 중 여성 직원은 매니저급에 57%,임원급에 38%가 포진하고 있다. 로레알코리아의 정규직 1200여명 중에는 여성직원 비율이 87%,과장급 이상 비중이 64%,임원급 비중이 43%다.

파리=강유현 기자 y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