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에 꽃 그림으로 깨달음 묘사했죠"
1990년부터 '생명과 명상주의' 미술운동을 펼쳐온 화가 겸 미술평론가 임두빈씨(56 · 단국대 교수)가 서울 사간동 금호미술관에서 작품전을 갖고 있다.

임씨는 평면회화와 한지 설치작업,행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아시아적 비전'을 조형으로 묘사해왔다. 작년 2월 스위스 취리히의 카바레 볼테르에서 한국 현대미술가 20여명의 작품전을 기획해 주목을 받았다.

오는 21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는 '역사와 문명의 반성'.한국 전통 미술 재료인 한지를 활용한 설치 작품뿐만 아니라 원고지 위에 그린 꽃 그림(사진) 등 30여점이 출품됐다.

그에게 역사와 문명의 반성은 곧 불교의 선(禪)사상과 직결된다. 사색과 명상을 상징하는 꽃,역사를 의미하는 문자를 소재로 꽃그림 작업을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캔버스에 아크릴,수채 물감으로 그린 가로 131㎝,세로 97㎝ 크기의 꽃그림은 원고지의 글씨와 꽃을 극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는 "모든 인간이 허구적인 '나'에 묶여 나와 너를 분리하기 때문에 분열이 생기고 지식도 그런 차원에서 형성돼 결국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며 "진정한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사색과 명상의 과정을 꽃과 문자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2m 크기의 한지에 수묵으로 그린 추상화 작업도 눈길을 끈다. 출품작들을 벽면에 부착하지 않고 천장에서 아래로 향하도록 배치,평면작업을 입체적으로 감상하도록 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대해 "한국의 아방가르드 미술은 선사상의 비전을 현대미술 정신과 결합하고 보편적인 미학으로 나아가려는 시도"라며 "한국 현대미술의 정체성을 되짚어보고 산업문명의 복잡한 현상을 넘어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02)720-5114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