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인터뷰] "옷도 마음을 다하면 아름다운 작품 나오듯…나무 심기도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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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망고나무' 대표 이광희 패션 디자이너
바늘 대신 흙삽 들고
전·현직 대통령 부인 옷 만들다가 멋모르고 따라간 아프리카서 '충격'
15弗짜리 망고나무가 100년 희망
선한 일을 미루면 악한 일이 된다는 어머니 가르침이 늘 나침반이 되죠
바늘 대신 흙삽 들고
전·현직 대통령 부인 옷 만들다가 멋모르고 따라간 아프리카서 '충격'
15弗짜리 망고나무가 100년 희망
선한 일을 미루면 악한 일이 된다는 어머니 가르침이 늘 나침반이 되죠
망고나무는 심은 지 5년부터 100년 동안 해마다 두 번씩 열매를 맺는다는 얘기를 듣고 '아하!' 했다.
구호식량도 급하지만 기아와 전염병을 해결하려면 저 나무를 심어줘야겠구나…
패션 디자이너 이광희씨(58).전 · 현직 대통령 부인 등 최상류층의 옷을 만들어 온 그가 소매를 걷고 흙삽을 들었다. 오랜 내전으로 황폐해진 아프리카 수단,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톤즈 땅에 망고 묘목을 심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지금 내가 심는 게 희망이구나. '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난해 3월 탤런트 김혜자씨를 따라 '멋모르고' 갔다가 그곳에서 삶의 극단을 보았다. 콜레라로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남은 주민들도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이들의 배고픔은 더했다. 그러나 먹을 게 없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애를 태우던 그가 시장에 갔다가 주먹만한 과일을 발견했다. 망고였다. 언제 열리는지 물었더니 1년에 두 번,건기(乾期) 때라고 했다.
심은 지 5년부터 100년 동안 해마다 두 번씩 열매를 맺는다는 얘기를 듣고 그는 '아하!' 했다. 당장의 구호식량도 급하지만 기아와 전염병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저 나무를 심어줘야겠구나. 그는 주머니에 있던 돈을 다 털어 100가구에 한 그루씩 묘목을 심어줬다. 귀국해서는 국제구호단체 월드비전과 함께 모금활동을 벌였다. 망고나무 한 그루 심는 데 드는 돈은 15달러.2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한 그루면 한 어린이를 살릴 수 있다. 그의 얘기를 듣고 다들 '나도 참여하겠다'고 해서 결국 사단법인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까지 설립했다.
"그냥 저 혼자 '힘 닿는 데까지' 하려고 했는데 일이 커졌어요. 망고는 비타민A가 많고 카로틴 등 영양이 풍부해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고마운 나무죠.그야말로 희망의 나무예요. 올해 다시 가서 1만5000그루를 심고 왔습니다. 내년에는 3만그루를 더 심을 계획이에요. 그런데 이번에 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작년엔 건기여서 정말 아무것도 없었는데 들판이 아주 푸른 거예요. 우기(雨期)였던 거죠.너무나 뜻밖이어서 막 웃었습니다. 그러다 알았죠.아,내가 우기에 왔더라면 망고나무 생각은 절대로 못했을 거야….'희망고'는 정말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 싶었어요. "
그는 망고 묘목을 심는 데 그치지 않고 재배법과 활용법,나눔과 공유의 의미까지 알려주고 있다. 현재보다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단을 넘어 아프리카 전역으로 '희망의 망고나무'가 퍼져 나가려면 마음의 뿌리가 통해야 한다는 것도 그는 잘 안다.
"우기에는 땅이 워낙 질척거려 차도 못 타고 경비행기를 타야 했어요. 6인승이라 짐도 많이 실을 수 없었죠.뭘 준비할까 궁리하다 볼펜과 풍선 1000개를 가져갔습니다. 아이들하고 풍선을 갖고 노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어요. 거기 가기 전부터 제가 이 일을 잘 하려면 현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너는 받는 사람,나는 주는 사람,이런 게 아니라 함께 소통하고 싶어서 마을 추장들에게 사람들 다 모아 잔치를 하자고 했어요. 평생 배부르게 먹어 본 적도 없고 굶는 것이 일상이기 때문에 하루 실컷 먹어 보자고….얼마나 행복해하는지,평생 처음이라고 해요. 잔칫날 풍선 제일 크게 분 사람에게 선물도 주고,정말 좋았죠."
'희망고 프로젝트' 이후 그는 자선패션쇼 등 크고 작은 행사를 더 자주 마련했다. 망고 묘목뿐만 아니라 식수용 물통도 필요했기 때문이다. 건기에 인근 강바닥 물을 낡아빠진 석유통으로 떠다 먹는 바람에 많은 아이들이 병에 걸렸다.
"연말마다 자선 행사로 브로치나 크리스마스 장식품 같은 걸 팔아 어려운 사람들을 돕곤 했는데 지난해 말에는 물통이랑 망고나무랑 세트로 해서 3만원짜리 계좌를 만들었어요. 부자회사들은 우물을 파주니까 나는 물통을 사줘야겠다 하면서 '제가 힘 닿는 데까지 하겠다'고 했죠.전 '힘 닿는 데까지'라는 말을 좋아해요. 자선행사에 동참하는 분들도 '3만원으로 100년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어디 또 있겠느냐'며 참 기뻐해요. "
'해남의 등대'로 불렸던 아버지 고(故) 이준묵 목사와 평생 남의 아이들을 먼저 챙기던 어머니 김수덕 여사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가. 그는 갈수록 부모님을 닮아가는 것 같다. 해남 땅끝마을에서 목회하며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 해남등대원을 세우고 유아들을 위한 천진어린이집과 노인복지재단 평화의집까지 만든 사랑의 핏줄.그의 어머니는 바느질 솜씨가 좋았지만 옷은 남들에게 다 입히고 돌아가실 때까지 무명한복 두 벌로 지냈다. 딱 한 번,말년에 딸이 버린 커튼을 다듬어 새 옷 한 벌 해 입은 게 가장 큰 호사였다. 그 옷은 30년 넘게 디자이너 일을 해 온 그에게 옷이란 무엇인지,어떻게 지어야 하는지,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일깨워줬다. '선한 일은 바로 하거라.내일로 미루면 악한 일이 된다'는 가르침과 함께.
"아버지,어머니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항상 아름다움을 추구하셨어요. 저는 부모님 곁을 빨리 떠나 서울로 왔지만 두 분 다 사랑의 실천을 온몸으로 보여주셨죠.하긴 옷 만드는 것이나 나무 심는 것이나 원리는 다 같잖아요. 수단 사람들과 잔치를 벌인 것도 그렇고….나무를 주니까 그냥 심는 게 아니라 의미를 알고 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무 한 그루를 심을 때도 마음을 다하면 결과가 다르잖아요. 옷도 제가 마음을 다해 만들 때 아름다운 작품이 나옵니다. 부모님 말씀처럼…."
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두 시간 전에도 그랬다. 그는 평소 작은 일에도 눈물을 잘 흘린다고 했다.
"그런데 수단에 갔을 땐 안 울었어요. 김혜자 선생님이 '자기 안 우는구나' 하면서 '나는 울어야 소용없다는 것을 10년 만에 깨달았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거기서 우는 건 '내 기준'으로 보니까 그런 거잖아요. 우는 것보다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하다 보면 오히려 함께 웃고 즐거워하게 돼요. 여기 사진 좀 보세요. 서로 보듬고 환하게 웃잖아요. "
만난 사람=고두현 문화부장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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