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아지랑이처럼 살아 꿈틀대는 것 같다. 굵고 가느다란 줄기가 제멋대로 휘어지고 굽어 있다. 알지 못할 한이라도 뭉쳐 있는 것일까. 한여름에도 찬기운이 돈다는 냉골이라서일까. 숲에 서린 기운이 그렇게 서늘할 수 없다. 경주 남산 삼릉솔숲,소나무 사진으로 알려진 배병우 작가의 솔숲이다. 남산의 천불동(千佛洞) 격인 삼릉골 불상트레킹은 이 솔숲의 마중으로 더 진지해진다.

◆천년 신라 불상의 보고

경주 남산은 신라인들이 만들려고 했던 불국정토다. 높이 468m의 낮은 화강암 바위산엔 수많은 절터와 석불,석탑이 있다. 높은 곳에서 본 산의 모양 또한 커다란 자라 형상이란다. 자라는 해인삼매(海印三昧)의 바닷속에 잠겨 있는 또하나의 불국정토,용궁을 향해가는 탈 것의 상징이다. 남산의 한 봉우리 이름이 '자라 오(鰲)'자를 쓴 금오산인 까닭이다. 남산이 경주 전체를 용궁으로 안내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할까.

삼릉골은 남산의 40여 골짜기 중 가장 많은 불상을 품고 있다. 신라 8대 아달라왕,53대 신덕왕,54대 경명왕의 것으로 전해지는 세 무덤 뒤로 이어지는 삼릉골은 자못 깊다. 불상 감상과 함께 짧지만 강렬한 계곡산행의 묘미도 즐길 수 있어 좋다.

삼릉솔숲을 지나 15분쯤 걸으면 석조여래좌상이 보인다. 머리는 소실됐지만 풍채만큼은 당당한 좌불이다. 바로 옆 계곡에 묻혀 있던 것을 찾아 앉혔다고 한다. 왼쪽 어깨에서 흘려 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옷을 동여맨 끈,무릎 아래로 드리어진 두 줄의 매듭이 선명하다.

석조여래좌상 왼쪽 산등성이의 돌기둥 같은 암벽에 돋을새김된 마애관음보살 입상이 있다. 큰 코에 살진 볼과 가늘게 감은 눈매가 예쁜 관음보살상이다. 입술에는 빨간 루즈(?)를 칠한 흔적이 남아 있다. 불상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채색했던 흔적이라는 설이 있다.

◆커다란 마애불상이 준비한 선물

석조여래좌상에서 10분쯤 더 오르면 계곡 건너 왼편에 선각육존불이 보인다. 아주 커다란 두 개의 바위에 선으로 음각한 여섯 불상이 있다. 바위가 거무죽죽해 잘 보이지는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면 정으로 쪼아 새긴 게 아니라 붓으로 한번에 그린 듯 자연스러운 불상이 확인된다.

선각육존불 가까이에 석불좌상(보물 666호)이 있다. 머리와 몸을 따로 만들어 결합한 불상이다. 석굴암 본존불에 버금가는 예술성과 규모를 갖춘 불상이라는데 왠지 근래에 조성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게 별 감흥이 없다. 심하게 파손된 얼굴 부위를 최근 복원했기 때문인 것 같다. 불상 바로 뒤에 기도처인 듯한 작은 암굴이 보이고 그 옆으로 선각여래좌상으로 가는 길이 나 있다. 선각여래좌상은 10m 정도의 바위벼랑에 선으로 새겨진 좌상인데 얼굴만 약간 돋을새김되어 있다. 큼직한 코,두툼한 입술,둥그런 턱선이 마음씨 좋은 시골 빵집 아저씨를 연상시킨다.

석불좌상께부터 계곡 길이 가팔라진다. 500m도 안되는 낮은 산의 계곡이 이렇게 깊을까 싶다. 두세 번 서서 호흡을 가다듬은 뒤 오르면 상선암. 삼릉주차장에서 1.8㎞ 거리다. 상선암 바로 위에 마애석가여래좌상이 좌정하고 있다. 높이 7m로 삼릉골에서 가장 큰 불상이다. 뚜렷한 이마와 초생달 같은 눈썹,우뚝한 코와 굳게 다문 입이 인상적이다. 어깨 아래 부분은 선각이지만 머리는 입체불에 가깝다. 바위 속에서 잠자고 있던 부처가 머리를 세워 막 세상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다. 마애석가여래좌상에서 800m 떨어진 금오봉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바위가 전망포인트. 커다란 마애석가여래좌상,허리를 굽혀 기원하는 사람들,그 아래로 펼쳐진 너른 뜰과 두세 겹 중첩돼 뻗은 산줄기가 어울리는 풍경이 부처가 준비해둔 선물임에 틀림없다.

경주=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 여행 TIP

경부고속철도 2단계 구간이 지난 1일 완전개통되면서 경주가 한층 가까워졌다.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KTX 열차는 하루 17편가량 운행된다. 2시간10분 정도 걸린다.

서울 경부고속도로~영동고속도로~여주분기점 중부내륙고속도로~김천분기점~경부고속도로~경주나들목~경주. 서울고속버스터미널과 동서울터미널에서 경주행 고속버스 및 시외버스가 출발한다. 4시간30분쯤 걸린다.

보문호 주변에 현대호텔(054-748-2233) 등 특급호텔과 콘도미니엄이 많다.

라선재(054-771-6040)의 요리가 정갈하다. 한국역사문화음식학교와 신라음식을 재현하고 있는 체험관으로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개인접시에 덜어먹는 요리 서너 가지와 비빔밥 또는 연잎밥 등 개인밥상이 기본으로 나온다. 2만2000원. 요리 수에 따라 3만3000원,5만5000원짜리가 있다.

된장찌개,콩비지찌개(5000원)를 잘하는 숟가락젓가락(054-772-8000),비빔밀면(4500원)과 물밀면(4000원)을 내는 현대밀면(054-771-6787),돼지국밥(5000원)집인 양지(054-742-9289) 등이 양이 푸짐하고 저렴한 음식을 차리는 집으로 소문이 나 있다. 최부자집과 요석궁 사이 골목의 작은 가게에서 부업으로 김밥을 만들어 파는 교동김밥도 경주토박이들이 좋아한다. 경주에서는 '교리김밥'으로 알려져 있다. 김밥 3줄 도시락 3000원,잔치국수 3000원. 경주시청 문화관광과 (054)779-6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