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미국의 추가 양적완화에도 불구하고 ECB는 출구전략을 고수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이 영향으로 유로화 가치는 10개월 만에 최고치로 올랐다.

◆"특별 정책들은 일시적이어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트리셰 총재는 4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1%로 동결키로 발표한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정책입안자들이 다음 달에는 출구를 향해 한발 더 나아가는 조치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며 "(금융위기를 맞아 취했던) 통상적이지 않은 조치들은 말 그대로 일시적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CB는 이미 금융위기 상황에서 취했던 특별 조치들의 상당 부분을 거둬들였다. 트리셰 총재는 이와 함께 "(유로존의) 경기회복 모멘텀은 긍정적"이라며 인플레이션 압력도 "약간 상승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여전히 높지 않은 상태"라고 진단했다.

블룸버그통신은 ECB의 출구전략이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추가 양적완화와 아일랜드 포르투갈 그리스 등의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와 맞물려 복잡하고 미묘한 문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 '주변국'의 채권 금리가 상승하고 유로화 가치가 오르면 유럽의 경제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 그리스 국채 금리는 지난주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 향후 재정위기 발생으로 구제금융을 받게 되는 회원국들에 대한 제재를 강화한다는 내용이 합의된 후 계속 오르고 있다. 국채 투자에 대한 손실 부담을 불안해 하는 투자자들이 재정이 취약하다고 평가받는 국가들의 채권을 내다 팔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아일랜드 10년 만기 국채는 벤치마크인 독일 국채와의 금리차(프리미엄)가 사상 최고인 5.2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포르투갈과 그리스 국채의 프리미엄도 각각 4.09%포인트와 8.56%포인트로 상승했다.

바클레이즈캐피털의 유럽담당 수석이코노미스트는 "ECB 발표문과 기자회견 내용만 보면 바로 전날 FRB가 새로운 경기부양책을 내놨다는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라며 "ECB는 여전히 내 갈길을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유로화 상승 압력 더 커져

트리셰 총재의 발언 여파 등으로 유로화는 유로당 1.4283달러까지 치솟았다. 10개월 만에 최고다. 유로화는 지난 6월 초 이후 달러화 대비 19%나 상승했다. 전문가들은 유로화가 연말에는 1.44달러 수준까지 치솟을 것으로 내다본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프랑스 재무장관은 "FRB의 추가 양적완화로 유로화가 상승 압박을 받을 것"이라며 "FRB의 정책을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국제 통화시스템과 협력 메커니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면 트리셰 총재는 FRB 결정에 대한 구체적 언급은 피하면서도 "미국이 자국의 수출 경쟁력을 위해 고의적으로 달러 가치를 낮추는 것은 아니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FRB의 양적완화 조치로 자국 통화가치의 상승 압력이 커진 국가들이 불만을 터뜨리는 상황에서 미국을 두둔한 셈이다.

블룸버그통신은 ECB의 행보가 다른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움직임과는 차별화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월스트리트저널도 ECB와 FRB의 정책 간격이 더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영국 중앙은행(BOE)은 이날 기준금리를 0.5%로 유지하는 한편 2000억파운드(약 3250억달러)의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지속한다고 밝혔다.

박성완 기자 ps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