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공조할 수도"..룰라 "서울 G20 때 따지겠다"
IMF "믿을만한 美 재정감축 시급"..WSJ "벌써 3차 양적완화 저울질"


미국이 경기 부양을 위한 또다른 극약 처방으로 신흥국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추가 '양적 완화'를 발표하자 이미 선진국발(發) 유동성 급증으로 타격받아온 신흥국들이 일각에서 공조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본격적인 방어에 나섬으로써 국제 통화 갈등의 먹구름이 갈수록 짙어만 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제통화기금(IMF)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이 지금 필요한 것은 "정말 믿을 수 있는 중기 재정 감축안"을 조속히 마련하는 것이라고 충고했다.

또 미 연방준비제도(연준)의 추가 양적 완화에도 불구하고 '출구 전략 기조가 불변'이라고 밝힌 유럽중앙은행(ECB)의 장-클로드 트리셰 총재는 "미국이 달러 가치를 (더) 떨어뜨리려는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고 믿는다"고 애써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월가의 대표적 투자자의 한 명인 짐 로저스는 이날 옥스퍼드대 강연에서 "불행히도 버냉키 박사가 경제와 통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그가 아는 것은 돈을 찍어내는 것뿐"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도 5일자에서 일제히 1면 기사로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가 모든 신흥국들로 하여금 본격적인 방어에 들어가도록 압박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저널은 중국을 비롯한 주요 신흥국들이 이미 선진국발 유동성 급증으로 통화 가치가 크게 뛰고 인플레 압박도 가중되고 있다면서 세계 최대 수출국인 중국이 특히 발끈한다고 지적했다.

신문은 달러에 대한 태국 바트화 가치가 올들어 이미 11% 이상 뛰었으며 필리핀 페소와 한국 원화도 각각 8%와 6% 상승한 점을 상기시켰다.

저널은 이와 관련해 한국은행이 4일 발표한 금융 안정 보고서가 외자 '경계 경보'를 내린 점을 지적했다.

또 홍콩 통화청이 부동산 '거품' 심화를 경계하고 있으며 필리핀 중앙은행도 유동성 추가 유입으로 인해 통화 가치가 더 뛰는 것을 경고한 점을 덧붙였다.

중국 통화 정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물의 하나로 알려진 리더수이(李德水) 전 국가통계국장은 4일 중국이 통화 가치 방어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른 신흥국들과 협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저널은 전했다.

저널은 일본이 양적 완화로 미국과 한 배를 탄 유일한 아시아 국가라면서 그러나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가 4일 연준의 추가 조치에 직접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난감한 상황임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은 오는 15-16일로 당초 예정됐던 정기 통화정책회의를 연준을 의식해 5일로 앞당겼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환율 전쟁"이란 표현을 공개적으로 첫 사용한 브라질의 기도 만테가 재무장관이 4일 "모두가 미국의 회생을 바라지만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고 전했다.

만테가의 입에서 헬리콥터란 표현이 쓰인 것은 버냉키의 별명인 '헬리콥터 벤'을 의식해 나온 것으로 보인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4일 미국의 추가 양적 완화에 대해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 환율 문제를 강력히 제기하겠다"고 경고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또 콘 차티카와닛 태국 재무장관을 인용해 태국 중앙은행이 주변국 중앙은행들과 통화 가치 방어 방안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씨티그룹의 스티븐 잉글랜더 애널리스트는 파이낸셜 타임스에 "연준의 (추가 양적 완화) 의도가 미국인과 투자자가 미국 자산을 (더) 사도록 하려는 것이지만 문제는 풀린 돈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월스트리트 저널은 5일 별도 기사에서 연준의 추가 양적 완화 발표 후 달러 가치가 더 떨어졌다면서 이런 가운데 금융시장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3차 양적 완화'가 6-9개월 안에 단행될지 모른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연합뉴스) 선재규 기자 jksu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