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오래된 지식 도구다. '전쟁터에서도 책을 읽었다'는 장군의 얘기는 위인전의 단골 메뉴였다. 책은 들고 다닐 수 있는 최강의 지식무기였다. 1990년 사건이 생겼다. 인터넷이 상용화되면서 최고의 지식도구 자리를 인터넷이 차지했다.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 사람들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넘어설 수 있었다. 하버드 같은 세계 최고 명문대학의 강의도 안방에서 들을 수 있게 됐다.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가 방한했을 때 수천명의 청중이 모인 것은 이미 그의 강의를 인터넷을 통해 들었던 사람이 그만큼 많아서였다.

그런데 인터넷은 젊은이를 위한 매체일까,아니면 중장년 이상을 위한 것일까. 혜택을 얼마나 입을 것인가를 기준으로 보면 중장년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 인터넷이다. 그러나 실제로 인터넷 문화를 선도하고 새로운 게임에서 이득을 본 것은 젊은 사람들이었다. 역사상 처음으로 중장년들이 후배들 어깨너머로 배우는 일이 생긴 것도 바로 이때였다.

현재 회사나 각종 조직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간부급 이상 리더들이 대부분 인터넷 시대에 굴욕을 맛봤다. 중장년들은 '장강의 앞물결'과는 비교도 안될 속도로 밀려났다. 검색 사이트에 키워드 몇 개만 입력하면 다 알 수 있는 일들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 더 이상 자랑이 되지 않았고,경험없이 도저히 알 수 없던 노하우들도 점점 줄었기 때문이다.

'디지털 노마드(nomad · 유목민)'라는 새로운 계층은 인터넷에서 앞서가는 젊은이들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새로운 기기가 나온 그 혜택을 중장년 이상이라는 중요계층이 깡그리 놓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뭘까. 바로 책과 인터넷의 결정적 차이 때문이었다. 책은 들고 다닐 수 있지만 인터넷은 놓고 다녀야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은 인터넷 접점을 크게 늘릴 수 있었다. 집에도 있고 도서관에도 있고 노트북도 갖고 다니고 또 정 안되면 PC방에 들르면 인터넷을 만났다. 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나 거의 마찬가지 효과였고 오히려 더 나은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간 것이다. 그러나 중장년들은 회사나 집에 있는 '붙박이 컴퓨터'에서 하루에 '가끔' 인터넷을 만나는 것이 평균적이었던 것이다.

왜 중장년인가.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그 사회의 중추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쟁력이 그 사회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중장년 이상 간부들의 정보통신 경쟁력이 높아지지 않으면 큰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메신저도 이메일도 '밑'에서만 통하고 '위'에는 항상 프린트물을 갖다줘야 한다면 오히려 회사의 의사소통 단계는 온 · 오프라인이 병존해 더 느려지게 될 뿐이다.

인터넷 상용화 20년,그러나 우리 앞에는 새로운 지식도구인 스마트폰이 있다. 두고 다니던 인터넷에 비해 훨씬 휴대성이 높은 것이 바로 스마트폰이다. 그런 점에서 스마트폰은 '책+인터넷' 이상의 지식도구가 된 것이다. 인터넷 접점이 떨어지던 중장년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왔다. 명실공히 '스마트 노마드'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휴대성이 강해지면서 다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거대한 시장이 생길 것이다.

인터넷 시대 성공한 모델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고 예상치 못할 새로운 비즈니스 강자들도 등장할 것이다. 이왕이면 회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중장년들이 그 기회를 잡아내야 한다. 그래야 글로벌 기업이 나오고, 나라의 경쟁력도 차원이 다른 도약을 이뤄낼 수 있다.

권영설 한경아카데미원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