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의 예상보다 오래 사는 것이 리스크(위험)인 시대다. 이로 인해 '장수리스크'라는 말도 생겨났지만 한국인의 노후 준비는 낙제점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장수리스크가 주요 선진국보다 두 배 이상 높은 반면 은퇴 후 소득 수준을 가늠하는 소득대체율은 선진국의 3분의 2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1일 미래에셋퇴직연금연구소와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장수리스크는 0.87로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0.33~0.37)보다 배 이상 높다. 한국인의 은퇴 후 생존기간이 자신의 예상보다 평균 87% 길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은퇴 생활비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할 때 본인 예상보다 두 배가량 더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은퇴 후 소득 수준도 선진국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35년간 일한 한국 근로자의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은 작년 기준 56.0%에 그쳤다. 미국의 소득대체율이 78.8%인 것을 비롯해 캐나다(72.6%) 영국(70.0%) 등 선진국들은 대개 70%를 웃돈다. 은퇴 전 똑같이 200만원을 벌었다면 한국인은 은퇴 후 각종 연금소득이 평균 112만원에 불과한 반면 미국은 157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다.

보험연구원은 한국 근로자의 적정 소득대체율을 65%로 추정하고 있지만 현실은 이보다 10%포인트가량 낮다.

공적연금(국민연금)과 사적연금(개인연금) 사이의 부족분을 메워줄 퇴직연금도 정책 지원 미비와 인식 부족으로 아직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한국 근로자의 퇴직연금 소득대체율은 13.5%로,세계은행이 권장하는 30%의 절반 미만이다. 국민연금 · 퇴직연금 · 개인연금으로 이어지는 '3층 노후 보장' 체계에서 퇴직연금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노후자금 부족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퇴직연금 활성화 등 노후소득 보장체계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퇴 후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을 확보하려면 퇴직연금의 소득대체율을 20%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도록 연금제도의 전반적인 개선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서정환 기자 ceoseo@hankyung.com

◆ 장수리스크ㆍ소득대체율

장수(長壽)리스크는 예상 은퇴기간 대비 예상치 못한 은퇴기간의 비율이다. 장수리스크가 0.80이라는 것은 은퇴 후 생존기간이 자신이 예상했던 것보다 80% 더 길다는 뜻이다. 가령 은퇴 후 20년 살 것을 예상했는데 실제로는 36년을 사는 것을 말한다. 소득대체율은 은퇴 후 연금소득을 은퇴 전 소득으로 나눈 수치로,100%에 가까울수록 은퇴 전과 다름없는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