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합의한 기업형 슈퍼마켓(SSM) 규제법안의 국회 통과가 25일 무산됐다. 통상 마찰 논란이 법안 통과의 최대 복병으로 떠올랐다.

◆SSM 규제 일단 무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는 SSM 규제 법안으로 유통산업발전법(유통법)과 대 · 중소기업상생협력촉진법(상생법)이 올라 있다. 유통법은 전통시장(재래시장) 반경 500m 이내에서,상생법은 전국 어디서든 중소상인의 피해가 우려되는 지역에서 SSM 설립을 제한할 수 있다.

정부와 한나라당은 유통법을 먼저 통과시키고,이보다 강력한 상생법은 유럽의회의 한 · 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결과를 지켜본 뒤 결정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민주당은 "유통법만으론 한계가 있다"며 유통법과 상생법 동시 통과를 주장했다.

이 같은 견해차는 지난 22일 좁혀지는 듯했다. 25일 본회의에서 유통법을 먼저 처리한 뒤 정기국회 마지막날인 오는 12월9일까지 상생법을 처리하기로 양당이 합의한 것이다.

하지만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22일 국정감사와 25일 민주당 간담회에서 "(상생법이 통과되면) EU와 통상마찰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거듭 밝히면서 상황이 꼬였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는 25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 · 여당이 합의한 사항을 통상교섭본부장이 '상생법은 영원히 안 된다'고 말해 민주당이 합의를 지킬 필요가 없다"며 유통법 처리를 전격 취소했다. 다만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상생법 처리에 반대하는 김 본부장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법안 처리는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 26일이나 27일 중 야당과 얘기해 법안을 처리할 것"이라고 밝혀 국회 통과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중소상인 '부글부글'

이날 유통법 통과가 무산되자 중소상인들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김경배 수퍼마켓조합연합회 회장은 "여야가 두 법안 모두 통과시키지 않기로 짠 것 아니냐"며 "통상당국의 반대가 새삼스러운 것도 아닌데 여야가 합의한 유통법마저 통과시키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규제에 부정적인 대형 유통업체들도 당황스럽다는 반응이다. 익명을 요구한 SSM업계 관계자는 "시장논리상 유통법과 상생법 모두 맞지 않는다"면서도 "규제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확정돼야 새로운 사업 계획을 짤텐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통상 마찰 벌어지면

유럽 국가 중 통상 마찰 가능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곳은 영국이다. 국내 홈플러스에 지분을 투자한 영국 국적의 테스코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SSM 규제법안이 통과되면 통상 마찰로 번질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분쟁 결과에 대해서는 "꼭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원종문 남서울대 교수(유통학)는 "세계무역기구(WTO) 조항을 보면 외국계 기업의 점포 수나 면적,시장접근성 제한을 못하도록 돼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상권이 붕괴된다거나 중소 유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국내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는 게 국제사회의 통념"이라고 말했다.

주용석/송태형/박수진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