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30]주요 20개국(G20)이 지난 주말 폐막한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경주회의에서 통화가치 절하 경쟁을 벌이지 말자고 합의했다.그 첫 시험대에 오른 것은 미국이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를 다음달 2∼3일 갖는다.FOMC는 지난 8월 회의 이후 시중에서 국채 등 장기증권을 매입해 자금을 더 풀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혀왔다.

문제는 추가 경기 부양을 위한 FRB의 2차 양적완화가 달러가치를 절하시키는 부작용에 있다.FRB가 국채 등을 매입하려면 달러를 더 찍어내 시중 공급량을 늘려야 한다.달러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이를 반영한 달러가치는 엔화,유로화,원화 등에 대해 하락해 왔다.

달러 추가 공급은 금융위기 이후 FRB가 도입한 제로금리 정책과도 맞물려 있다.미국 내 달러화 투자자금들이 고금리와 환차익을 좇아 신흥국가들로 대거 유입되면서 해당국의 통화가치를 절상시키고 있다.수출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은 자국 통화가 절상되면 수출 가격 경쟁력이 불리해진다.그래서 인위적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절상을 막으려 한다.이같은 경쟁적인 개입이 환율전쟁으로 확산됐다.

실제로 일부 국가들은 FRB의 추가 양적완화가 바로 환율전쟁을 부추기는 원인이라고 주장한다.독일의 라이너 브뤼더레 경제장관은 경주회의 직후 달러 유동성을 증대시키는 미국의 통화정책이야말로 환율을 간접적으로 조작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브뤼더레 장관은 “통화량의 지나치고 지속적인 증가는 간접적인 환율 조작”이라고 말했다.중국의 셰쉬런 재정부장도 회의 후 “국제적인 주요 통화의 발행국들이 책임있는 경제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며 미국을 겨냥했다.셰 부장은 “의도하지 않은 파급 효과를 피하려면 주요 환율들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주회의 공동성명은 “기축통화를 보유한 선진국들이 환율의 과도한 변동과 무질서한 움직임을 경계해야 한다” 면서 “이런 경계가 일부 신흥국으로 유입되는 자본의 과도한 변동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도와줄 것”이라고 명시했다.직접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미국이 FRB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에 신중할 것을 지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FRB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이 다음달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의 도마에 오를 수 있다고 보도했다.워싱턴포스트(WP) 역시 경주회의 공동성명 행간에는 FRB의 추가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한 어떤 조치도 신흥국가들의 통화가치와 자본흐름에 혼란을 주지 않도록 감안돼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해석했다.

G20 국가는 물론 전세계 금융시장 및 환율시장이 FRB의 행보에 주목하는 까닭이다.경주회의 직전 리처드 피셔 댈러스 연방총재는 FOMC에서 환율문제가 논의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최대 관심은 FRB가 추가 양적완화에 나선다면 시중에 얼마나 많은 달러를 더 풀지,얼마나 빠른 속도로 달러를 풀지에 모아진다.김중수 한국은행 총재도 경주회의에서 벤 버냉키 FRB 의장에게 관심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버냉키 의장은 최근 보스톤 연방은행 컨퍼런스에서 경기 부양을 위한 추가 액션이 필요함을 재확인하고 규모와 방식을 고심하고 있음을 내비쳤다.때문에 FRB가 달러를 대거 공급하는 충격 요법과,일단 소규모로 시작하되 경기상황을 봐가면서 공급 규모를 늘리는 ‘베이비 스텝’을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시장에서는 FRB가 5000억∼1조달러를 풀 것이란 관측과 1000억달러씩 여러 차례 나눠 풀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반면 티모시 가이트너 미 재무장관은 경주회의를 전후해 “미국은 시장에 개입해 달러가치를 절하하지 않겠다” 며 “강한 달러”를 약속해왔다.

FRB가 경주합의 정신과 가이트너의 약속을 반영하느냐,아니면 아예 무시하느냐에 따라 G20 국가들의 비난과 대응 수위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FOMC 회의 결과에 G20 국가들의 반발이 커지고 환율전쟁이 재현될 경우 다음달 11∼12일 열리는 G20 서울 정상회의는 다시 큰 숙제를 안게 된다.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