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가 옛날부터 잘 살았던 것은 아니다. 국토의 25%만이 경작 가능하고 나머지는 산맥 · 호수로 이뤄진 전형적인 산악국가인데다,농사를 위한 토양의 질도 그리 좋지 않다. 산업혁명 이전인 18세기까지는 목축 · 치즈 · 우유가 산업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1500년대 초부터 프랑스 왕이나 교황 용병으로 충성을 하고 식량 · 소금 등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는 용병산업이 발달했다.

루체른의 빙하공원 옆에 있는 '사자상'은 스위스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 당시 성난 군중들이 파리의 튈르리궁으로 쳐들어갔고,스위스 용병 호위대가 죽어가는 순간까지 군중을 방어하는 가운데 프랑스 왕 루이16세와 왕족들이 정원을 가로질러 피신하도록 한 것이다. 이때 사망한 26명의 장교와 사병 760명의 충성심과 용맹함을 널리 알리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당시 루이16세는 이미 대세가 기운 것을 알고 스위스 용병들에게 피신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용병들은 왕의 신변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채용돼 여기까지 왔는데 피신한다면 후손들에게 더 이상의 용병자리가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모두 죽음을 택했다고 한다.

이처럼 신용을 중시하는 용병의 전통은 오늘날에도 스위스 기업문화에 뿌리 깊게 남아있다. 투자 상담을 위해 오전 10시에 만나기로 약속한 투자가는 정확하게 시간을 맞춰 사무실 초인종을 누른다.

KOTRA 사업 중에 무역사절단 지원 사업이란 것이 있다. 10여개의 국내 중소기업들이 2~3개국을 순회하면서 사전에 주선된 바이어와 상담하는 1 대 1 맞춤형 해외시장 개척 사절단이다. 어느 날 시장개척 사절단이 스위스를 방문했는데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멤버에게 슬쩍 알아보니 스위스에 오기 전 방문한 인근 국가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바이어들의 30%가 아무런 통보도 없이 상담장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스위스에서는 약속한 바이어 100%가 정해진 시간에 상담장에 나타났다.

용병으로라도 나가지 않으면 달리 살아갈 방법이 없던 가난한 용병들이 일궈낸 시대정신과 오늘날 스위스에 뿌리내려 있는 기업가 정신,'신용'의 기업문화는 서로 깊은 관련이 있음에 틀림없다.

현재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이 7만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부자나라다. 스위스 기업,산업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시계산업으로 대표되는 정밀함','제약과 바이오테크 산업의 과학기술' 등 긍정적 이미지가 주류를 이룬다. 1800년대 선조들부터 의도했건 아니건 간에 이런 신뢰의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을 했으니,스위스의 국가이미지 구축에는 200년 이상이 소요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