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미국의 죄수들은 발음은 같지만 철자(spelling)는 다른 감옥으로 간다. 영국은 감옥을 gaol이라 쓰고,미국은 jail이라 쓰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사전편찬자 노어 웹스터가 스펠링 혁신을 시도한 결과다. 미국이 영국에서 독립한 직후 식민지 잔재를 떨쳐버리자는 애국운동이 펼쳐졌고,웹스터는 언어 주권을 갖기 위해서는 영국과 다른 미국식 영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국식 스펠링이 발음과 동떨어질 뿐만 아니라 어원과 관계없이 발음되지 않는 불필요한 알파벳이 많아 효율성도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litre는 liter로,colour는 color로,offence는 offense로,cheque는 check로 바뀐 것도 이런 까닭이다.

영어는 왜 이렇게 복잡할까. 미국 영어 · 영국 영어가 다르고,스펠링과 발음 규칙이 일정하지 않다. 문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예외적 표현들도 수두룩하다. 《영어전쟁 & 그 후》는 이처럼 영어가 복잡해진 원인을 영어의 역사,특히 150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전쟁을 통해 지배와 피지배를 반복해온 역사에 있음을 보여준다.

잉글랜드에서 영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은 5세기 중엽부터다. 당시 잉글랜드에 살던 켈트족이 픽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바다 건너에 있는 게르만족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고 훗날 '앵글로색슨족'이 된 이들 게르만족이 사용한 언어가 영어의 모태인 고대 영어였다.

따라서 영어에는 켈트어의 흔적이 남아있고,기원전 55년 이래 로마가 여러 차례 잉글랜드를 원정한 결과 라틴어의 흔적도 짙게 남았다. 방벽으로 둘러싸인 마을을 뜻하는 지명인 Chester,Manchester 등은 라틴어 castra(군영)에서 유래한 단어다. 3세기 이후 기독교 선교사들은 더욱 많은 라틴어와 알파벳을 전했다.

이후에도 영어는 바이킹의 침입,1066년 노르만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노르만의 잉글랜드 침입과 왕위 찬탈,1400년 근대 영시의 아버지로 불리는 초서의 사망,1467년 인쇄술 도입,1485년 튜더 왕조의 탄생과 1660년 왕정복고,1776년 미국 독립과 1906년 최초의 라디오 방송 개시 등을 계기로 변모를 거듭했다. 특히 노르만 정복 이후 중세 영어 기간에 지배계층의 언어였던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차입된 단어는 1만여개에 달했다.

그러나 백년전쟁과 흑사병을 계기로 영어는 프랑스어를 밀어내고 승자의 자리에 올라선다. 1337년부터 1453년까지 116년 동안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며 적국의 언어 대신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애국심의 발로로 여겨지면서 영어는 통치계급의 언어로 확고히 자리잡았다. 또 1348년 흑사병으로 라틴어를 잘 구사하는 수도승과 성직자들이 많이 죽자 영어 사용 인력이 그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했고,영어의 지위도 크게 향상됐다.

영국은 18~19세기에 세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해 영어의 씨를 뿌렸다. 북아메리카 원주민과는 전쟁과 화친을 거듭하며 북미 대륙에 영어의 뿌리를 내렸다. 북미의 첫 식민지 '버지니아'는 'Virgin Queen'인 엘리자베스 1세를 기리는 이름이고,캐롤라이나는 영국 왕 찰스 1세의 여성형 이름이다. 미국 독립은 영국과 다른 미국 영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한편 유럽 각국과 식민지 각축전을 벌이면서 생긴 상처로 영어에는 네덜란드어,스페인어의 흔적도 많이 남아 있다. 양키,쿠키,보스,와플은 네덜란드어에서 유입됐고,바비큐,초콜릿은 스페인어에서 들어왔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