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은행(IB)은 안 됩니다. 글로벌 IB들이 너무 쟁쟁해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자산운용업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헤지펀드에 대한 규제도 하루빨리 풀려야 합니다. "

빌 황 타이거아시아매니지먼트 대표(45 · 사진)는 지난 18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금융에서도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세계적인 기업이 나와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자산 12억달러 규모의 타이거아시아펀드를 책임지고 있는 매니징파트너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황 대표는 이날 국제금융센터 주최로 열린 한인금융인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중국 일본 등 아시아 지역에 주로 투자하는 타이거아시아펀드는 한국 주식에도 전체 자산의 10% 정도(작년 말 기준)를 투자하고 있다.

황 대표는 "타이거아시아펀드를 처음 만들었을 때는 한국 투자비중이 80%에 달했다"며 "한국 투자만 고집했다면 지금처럼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은 상품을 만들어 투자자에게 판다는 점에서 제조업과 비슷하다"며 "금융산업이 제조업에 편승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금융의 핵심 경쟁력인 자금력과 인력을 이미 확보한 만큼 이를 바탕으로 해외 투자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수준으로 자산운용사들을 키워야 할 시점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황 대표는 "현재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계 금융인만 1000명에 달한다"며 "풍부한 국내 자금과 이들의 인적 네트워크가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가 상당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래에셋 삼성 등 국내 운용사들이 미국을 비롯한 해외시장 진출을 시도하는 움직임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금융회사의 대형화,국제화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황 대표는 "중국은 시가총액이 150조~200조원에 달하는 대형 은행이 5~6개나 있는데 비해 한국은 규모가 가장 큰 국민은행 신한은행도 시가총액이 20조원에 불과하다"며 "시총이 크지 않으면 투자를 제대로 하기 힘들고,외국인들의 투자 대상이 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국민연금 한국투자공사 등 공기업들이 해외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다"며 "민간 금융회사 중에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회사가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정부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헤지펀드 규제완화와 관련해 조속히 해소돼야 한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황 대표는 "한국의 금융 규제완화 문제가 계속 지연되면서 홍콩과 싱가포르에 시장을 빼앗기고 있다"며 "금융위기 진앙지였던 미국 월가에서도 헤지펀드들이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헤지펀드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이해가 부족하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표시하며 "해외 헤지펀드들이 서울사무소를 설치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지연 기자 serew@hankyung.com

◆ 빌 황 대표는

빌 황 대표(한국명 황성국)는 고등학생 시절 미국으로 건너가 UCLA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카네기멜론대에서 MBA를 취득했다. 이후 페레그린증권과 현대증권의 법인주식 세일즈 부문을 거친 뒤 1996년 타이거펀드에 합류했다. 초창기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다 타이거펀드의 줄리안 로버트슨 총괄회장에게 능력을 인정받아 아시아 투자책임자로 발탁됐다. 타이거펀드는 1980년 800만달러로 출발해 한때 자산 200억달러를 웃도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로 부상했지만 2000년 닷컴버블 붕괴와 함께 해체됐다. 황 회장이 이끄는 타이거아시아매니지먼트는 타이거펀드 해체 당시 떨어져 나온 독립법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