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나들섬 공약'을 내놓은 적이 있다. 한강 하구 비무장지대 일대 약 30㎢(여의도의 10배) 면적의 땅에 대규모 남북경협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들섬 프로젝트를 통해 남북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하고 항만은 물론 서울~인천~평양~개성을 잇는 육로도 만들어 남북 경협을 활성화하자는 것이 취지였다. 일각에선 지난 정부 때 시작했던 개성공단 사업의 단점을 보완해 남북 경협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현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지금 나들섬 공약은 사실상 폐기됐다.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타당성조사에 들어간 지 2년이 넘었지만 아무런 얘기도 나오지 않고 있다. 통일부 관계자는 "LH의 연구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인 세부 추진 계획을 만들어볼 수 있겠지만 현재로선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지지부진한 개성공단

2004년 10월 시작된 개성공단 사업도 진척이 더디다. 2007년 1단계 공사가 마무리돼 121개 중소 제조업체가 입주해 있지만 현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경색된 이후 생산유발 효과는 보잘것없다.

통일부에 따르면 지난해 개성공단의 직접 생산량은 2억5647만달러였다. 당초 정부가 예상한 개성공단의 경제적 효과 198억달러에 비하면 80분의 1 수준도 안 된다. 진척이 늦어지면서 2,3단계 사업 전망은 더 불투명해졌다.

개성공단이 지지부진해진 데는 남북 관계의 복잡한 변수가 얽혀 있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상황에서 처음부터 예견됐던 일"(고일동 한국개발연구원 북한경제연구실장)이라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다른 평가도 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북한을 고정변수로 놓고 본다면 결국 우리가 어떻게 접근하느냐도 매우 중요하다"며 "남북관계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변수에 좌우되지만 정부 하기에 따라서 경협을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충분히 끌고 갈 수 있다"고 말했다.

◆남북 경제특구 방치해야 하나

전문가들은 남북 대치 국면에도 불구하고 경제특구 사업은 장기적 관점에서 의지를 갖고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순직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남북 경제특구는 인력난에 처한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산업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기여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중국이나 베트남에 진출했다가 인건비 상승으로 유턴한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주목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며 "개성공단은 중소 제조업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핵심 고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반론도 있다. 체제론을 전공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북한은 개성공단을 달러벌이 용도로만 생각한다"며 "경제특구가 잘되면 오히려 북한체제를 연명시키는 수단으로 이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남북 경제특구의 당위성은 부인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경제성장 효과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요인인 지정학적 리스크를 줄이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북한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남북한의 희망적 미래"라며 "경제특구가 잘 풀린다면 지정학적 리스크를 해소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특구 5개로 늘리자

이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절 축사에서 '비핵 · 개방 3000'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북한이 핵개발을 포기할 경우 10년 안에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를 달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것으로 현 정부의 대북 핵심 공약이다. 여기에 북한 내에 5대 경제자유무역지대를 설치하겠다는 것이 포함돼 있다.

양문수 교수는 "남북한 교류를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장기적으로 통일에 대비하는 게 목표라면 지금부터라도 경제특구 확대를 위한 밑그림을 그려나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경제특구 추가 후보지는 신의주 남포 나진 · 선봉 금강산 등이다. 홍 연구위원은 "경제특구가 5개로 확대되면 우리 경제는 물론 북한 경제에도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순수 국내총생산(GDP) 개념의 부가가치 유발 효과가 126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계산이 나온 개성공단을 먼저 제대로 정착시켜 성공모델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