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리눅스와 위키피디아는 말한다…적자생존은 가고 공감의 시대가 왔다고…
제1차 세계대전이 5개월째 접어들던 1914년 12월24일 저녁 프랑스 플랑드르 지방.독일군과 영국군이 채 30~50m도 떨어지지 않은 전장에서 대치했다. 살을 에는 추위는 뼛속까지 파고들었고,야전 상황은 참혹했다. 화장실이 부족한 탓에 곳곳에서 냄새가 진동했고 전사한 병사들은 양 진영 사이의 무인지대에 버려졌다.

땅거미가 질 무렵,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독일군 병사들이 위문용품으로 받은 수천 개의 크리스마스 트리에 촛불을 켜고 캐럴을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적진을 응시하던 영국군 병사들이 머뭇거리며 박수를 쳤다. 잠시 뒤엔 환호성까지 질렀다. 양쪽 병사들이 참호에서 기어나와 무인지대를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고는 서로 악수를 나누고 담배와 비스킷을 건네며 성탄 전야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 이들은 서로 도와가며 전사한 동료들을 묻었다. 꿈같은 '크리스마스 휴전'이었다.

국가에 대한 충성도,계급사회의 명령체계도,서로에 대한 살의(殺意)도 접어둔 채 이들은 왜 그랬을까. 미국의 대표적인 사회사상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펜실베이니아대 와튼경영대학원 교수)은 '크리스마스 휴전'에서 플랑드르의 병사들이 보여준 것은 서로에 대한 '공감'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뿌리 깊은 원죄론도,'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역설했던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도,인간을 원래 탐욕스런 동물로 단정한 존 로크도,'행복은 쾌락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던 제러미 벤담도 틀렸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능력 가운데 가장 으뜸가는 것이면서도 소홀히 다뤄졌던 공감능력은 모든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보편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공감의 시대》에서 리프킨은 공감을 인간을 이해하는 새로운 키워드로 내세우면서 인간은 적대적 경쟁보다는 유대감을 갖고 가장 고차원적 욕구를 지향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공감이라는 용어의 역사는 길지 않다. 1872년 로베르트 피셔가 미학에서 사용한 독일어 'Einfuhlung(감정이입)'에서 유래했다. 독일 철학자이자 역사가인 빌헬름 딜타이는 이 미학용어를 빌려 정신 과정을 설명하는 데 사용했고,1909년 미국의 심리학자 E B 티치너가 이것을 '공감(empathy)'으로 번역했다. 이후 공감적(empathic),공감하다(empathize) 같은 파생어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신개념 용어로 자리 잡았다.

리프킨은 다른 사람의 고통과 행복을 자신의 것인 양 느끼고,함께 살아야 한다는 공감의식과 유대감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책에서 고대 신화적 의식의 시대부터 기독교 문명의 발흥,18세기 계몽주의와 19세기 이데올로기 시대를 거쳐 20세기 심리학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공감적 특성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살펴본다.

인류는 새로운 에너지 제도가 도입될 때마다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혁명과 맞물려 훨씬 복잡한 사회를 만들어냈다는 것.수렵채집 시대에는 구두문화가,관개농업 사회에는 문자가 경제를 관리하는 소통도구였다. 19세기에는 인쇄매체가 1차 산업혁명을 이끌었고,20세기에는 전기통신에 의해 2차산업이 이뤄졌다.

이처럼 인류가 기술적으로 진보할 때마다 공동체는 커졌고 인간의 의식이 확장됐으며 공감의식도 촉진됐다고 그는 설명한다. 그러나 공감의식이 촉진된 만큼 인류의 에너지 사용은 많아지고 자원은 더욱 빨리 고갈된다는 아이러니가 문제다. 교통 · 통신의 발달로 에너지 집약적이고 상호연관적인 세계에서 지구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지만 재앙에 가까운 기후변화와 에너지 고갈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정도로 엔트로피가 증가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같은 위기 상황에서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공감을 계속 성장시키고 글로벌 의식을 확장시켜 나가는 길뿐"이라고 단언한다. 적자생존과 부의 집중을 초래한 경제 패러다임이 끝났으며 세계는 오픈 소스와 협력이 이끄는 3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것.오픈소스 컴퓨터 운영체제인 리눅스와 무료 오픈소스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리프킨은 "경제활동은 더 이상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전의를 다지고 벌이는 적대적 경쟁이 아니라 마음이 통하는 선수들끼리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모험"이라며 "분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협업의 경제체제에 동승하는 개인과 기업,나라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구체적인 방법은 승패를 가리는 게임에서 '윈윈 게임'으로,폐쇄성에서 투명 경영으로,이기적 경쟁에서 이타적 협업으로,엘리트 에너지에서 재생 가능한 분산 에너지로,소유의 시대에서 접속의 시대로 변하는 것이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