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룸살롱 면세 조항 '뚝심'으로 없앴죠"
정부가 지난달 28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2010년 세제개편안 중 주목받지 못하고 지나친 것이 하나 있다. 유흥주점을 이용하는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개별소비세 면제 혜택 폐지가 그것이다.

현행 개별소비세법상 내국인이 룸살롱이나 요정 등 유흥주점을 이용하면 소비세(이용금액의 10%)를 문다. 하지만 유흥주점을 드나드는 외국인 관광객은 면제 혜택을 받는다. 정부가 내년부터 이 같은 내용의 개별소비세법 조항을 없애기로 한 것이다.

이 제도의 폐지를 주도한 사람은 기획재정부 내 여성 공무원으로는 최고 직급까지 올라간 김경희 환경에너지세제과장(41 · 사진)이다. 김 과장은 "1982년 전두환 정부 시절 관광진흥을 명분으로 도입된 이 제도가 지금까지 30년 가까이 유지됐다"며 "누가 봐도 불합리한 제도여서 마음먹고 폐지안을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그는 "세제를 책임지는 국가 공무원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문제"라고도 했다.

재정부가 이 제도를 없애려고 시도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에도 몇 차례 세제개편안을 마련할 때마다 이 제도가 내국인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폐지를 추진했다. 외국인 관광객의 국내 기생관광을 조장한다는 국민의 반감도 감안했다. 하지만 외국인 단체와 유흥주점 업계의 민원 등으로 매번 무위로 돌아갔다. 정부안으로 확정하지 못한 데에는 세제실 간부들이 적극 나서지 않은 탓도 있었다.

김 과장은 "내년 세제개편안이 국회로 넘어간 상태여서 국회 심의 과정에서 유흥주점 업계의 로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그렇더라도 국회에서 반드시 통과돼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도 관광 선진국으로 진입한 만큼 고유의 문화 유산을 자랑하는 쪽으로 관광 산업을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폐지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공포 등을 거쳐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된다. 일반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주한 외교관에게 모두 적용된다.

김 과장은 격무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금녀(禁女)의 부처'로 통하는 재정부(옛 경제기획원 재무부 시절 포함) 내 공채 출신 여성 과장 1호다. 1997년 세제실 소비세제과 사무관 시절 세계무역기구(WTO)에 맞서 주세(酒稅) 협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2004년 지역경제정책과 사무관으로 근무할 때에는 토지규제개혁 작업을 혼자 해치우는 저력을 보여줬다. 작년 초부터 환경에너지세제를 총괄하면서 노후차 교체시 개별소비세 면제,에너지 다소비 가전제품에 개별소비세 과세 등 굵직한 세제정책 입안도 주도했다.

연세대 법학과(영문학 복수전공)를 나와 행시(37회)에 합격한 뒤 세제실의 소비세제과,국제조세과,경제정책국의 경제분석과 등에서 근무했다. 남편은 이강호 재정부 국제기구과장으로 부부가 함께 같은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