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제차 수입업자인 함모씨는 2007년 독일 현지 자동차 수출업체로부터 '아우디 S5' 두 대를 구입했다. 아우디 차량의 국내 독점 판매권자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를 거치지 않은 '진정상품 병행수입'이었다. 이 가운데 한 대에서 운행 4개월 만에 엔진 결함이 발견돼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에 무상서비스를 요청했지만 회사는 거부했다. 함씨는 3600만원을 들여 엔진을 교환한 후 회사에 구상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달 "아우디 본사와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간에 병행수입 차량에 대한 수리 약정이 체결되지 않았다"며 "무상수리 거부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진정상품 병행수입이 늘어나면서 관련 분쟁이 법정을 달구고 있다. 12일 관세청에 따르면 병행수입 상표 등록건수는 2007년 3919건에서 2008년 3889건으로 다소 줄었다가 지난해에는 4225건으로 급증,처음으로 4000건을 돌파했다. 명품이나 외제차 등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삼성물산,SK네트웍스 등 종합상사와 롯데쇼핑 등 대형 유통업체,온라인 쇼핑몰 등이 대거 병행수입에 뛰어드는 추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상표권 등 침해소지가 많아 대기업들도 분쟁에 휘말리기 일쑤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영국 식기 브랜드 '포트메리온' 상품의 독점 수입업체인 한미유나이티드가 해당 상품을 병행수입한 롯데쇼핑을 상대로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낸 업무방해행위금지 소송에서 "롯데쇼핑은 포트메리온 판매 시 '영국 직수입' 등 표시를 해서는 안 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롯데쇼핑이 영국 본사에서 직접 제품을 수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며 "직수입 문구 사용은 소비자를 혼동하게 하는 상표권 침해 행위"라고 판시했다.

매장에 상품 표장을 함부로 표시해도 위법이다. 의정부지법은 나이키 제품을 병행수입해 팔면서 매장 간판 등에 나이키 표장을 표시한 이모씨에 대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혐의로 지난 8월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미국 나이키나 한국 나이키스포츠로부터 표장 사용을 허락받은 적이 없는데도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병행수입 제품이 '짝퉁'으로 오인받아 고초를 겪기도 한다. 인천지법은 지난 6월 일본 의류 브랜드인 '노스페이스'에 대한 상표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우모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우씨는 2007년 홍콩 사업자로부터 상표 라벨이 제거된 노스페이스 재킷 200점을 구입해 인천공항세관을 통해 반입하다 위조품으로 의심한 세관원에 의해 검거됐다. 재판부는 "위조품이라는 증거가 없고 위조품이라면 오히려 위조된 상표를 달았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병행수입업자가 국내 독점 판매권자의 광고 사진 등을 무단 사용하다가 돈을 물어주기도 한다. 서울중앙지법은 미국 주방용품 제조사인 컷코인터내셔널이 '컷코' 병행수입 상품을 판매한 이모씨 등 5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씨 등은 1인당 50만~170만원을 배상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이씨 등은 컷코인터내셔널이 제품 홍보를 위해 촬영한 사진을 도용해 온라인 쇼핑몰 등에 게재했다가 이 같은 선고를 받았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 진정상품 병행수입

외국에서 적법하게 상표가 표시돼 유통되는 진품을 제3자가 독점 수입판매업자의 허락을 얻지 않고 국내에 수입해 판매하는 행위다. 정부가 수입 공산품의 가격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1995년 11월부터 허용 기준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수입업자가 관세청에 8%의 관세를 내고 들여오는 합법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