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말한다…글로벌 인터뷰] (1) 그린스펀 "돈 더 풀지 말고 시장에 맡기는 게 최선의 부양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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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앨런 그린스펀 前 FRB의장
재정이냐 통화냐 논쟁 무의미…아무런 정책 취하지 않는 'do nothing'도 대안
금융회사에 너무 많은 규제 가하면 성장 저해…한국도 투자은행 육성해야
1차 양적완화 효과 검증 안돼…은행에 수 조 달러 풀었지만 대출됐다는 흔적 거의 없어
美경제 완전히 정상화 되려면 기업ㆍ투자자 위험 회피 말고 자신감 갖고 적극 투자해야
재정이냐 통화냐 논쟁 무의미…아무런 정책 취하지 않는 'do nothing'도 대안
금융회사에 너무 많은 규제 가하면 성장 저해…한국도 투자은행 육성해야
1차 양적완화 효과 검증 안돼…은행에 수 조 달러 풀었지만 대출됐다는 흔적 거의 없어
美경제 완전히 정상화 되려면 기업ㆍ투자자 위험 회피 말고 자신감 갖고 적극 투자해야
미국 워싱턴 코네티컷가(街)에 있는 앨런 그린스펀 전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 사무실.18년6개월 동안 FRB 의장을 지낸 그 시절의 '그린스펀' 그대로였다. 예민한 시장을 다루듯 자신의 지론을 차분하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담아내는 화법은 깊이와 무게를 더했다. 주요한 대목마다 시장의 자율과 힘을 강조한 그린스펀은 영원한 시장우선주의 이코노미스트였다.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미국의 경기 침체가 지난해 6월 종료됐다고 발표했는데요. 일반인들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이와 달라 혼동스럽습니다.
"전미경제연구소가 발표한 내용은 경기 후퇴(receding)가 끝났다는 의미입니다. 경기 순환곡선상 가장 저점에 도달한 게 지난해 6월이라는 뜻이지 경기가 정상화됐다는 게 아니지요. "
▼언제쯤 미국 경제가 완전히 정상화될 것이라고 보십니까.
"기업과 투자자들의 위험 감수 정도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이들이 장기간 회수할 수 없어도 공장설비 등 고정자산에 유동현금을 적극 투자하고 싶다는 자신감이 있느냐 없느냐 여부입니다. 미국에선 현재 이런 위험 감수를 싫어하는 현상(risk aversion)이 심합니다. 기업과 투자자들의 자신감이 부족해 경제가 조속히 정상화되지 않는 것입니다. "
▼FRB와 미 재무부가 공적 구제금융을 대거 투입해 금융위기를 수습하지 않았습니까.
"FRB가 기업어음 시장과 머니마켓펀드 시장을 떠받치고,재무부가 금융권의 부실자산제거작업(TARP)을 벌인 일은 아주 중요한 조치였습니다. 다만 대규모 시장 개입 직후 경제가 자체적으로 치유,정상적인 단계로 회복되도록 했으면 상황이 더 좋아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이를테면 주가 폭락 후와 같다고 봐요. 주가는 폭락한 뒤 모든 투자자들의 진이 다 빠졌을 때 진정한 반등이 이뤄지거든요.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 주식시장에서는 정부 개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증시는 다른 경제 부문들에 비해 가장 성과가 좋았습니다. (정부가) 기업과 금융의 룰을 계속 바꾸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룰을 자주 변경하면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장기 고정자산에 투자하길 꺼리게 됩니다. 재정적자 문제도 그래요. "
▼미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해소할 방법이 있다는 얘기인가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지난 25년간 취해온 재정적자 해소법은 세금을 인상해 세수를 늘리는 것보다 지출을 줄이는 것이었습니다. 세금을 더 거둬도 정부의 지출 의지가 더 커지면 일시적으로 적자를 줄이는 데 그칩니다. 그렇다고 지출 의지에 따라 세금을 계속 올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전 정부 때 도입한 감세정책은 올 연말 종료되게 놔둬야 한다고 봐요.
임시방편으로나마 세금 인상이지요. 제가 눈여겨 보는 것은 역시 민간 투자입니다. 지금은 민간 투자가 위축돼 있어요. 민간 투자가 활성화되도록 해야 경제가 성장,재정적자를 줄일 수 있다고 봅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재정적자를 본격적으로 줄이기 위해 2~3년 기다려보자고 말하는데 아주 위험한 전략이에요. 할 수 있는 한 지금 당장 대응해야 합니다. 다만 정치가 발목을 잡고 있는 탓에 그게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
▼지난 8월 FRB는 국채 매입 등을 통한 추가 양적완화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는데요.
"제가 FRB 의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항상 고마운 게 있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 전임자들이 제 통화정책에 대해 결코 코멘트를 하지 않은 일이지요. 저도 은퇴 후 그랬습니다. 때문에 경제 데이터를 챙기는 경제학자로서 잠깐 거론할까 합니다. 요즘 양적완화라고 부르는 정책은 이전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개념입니다. "
▼올바른 정책방향이 아니라고 보시는 건지….
"앞서 FRB가 시중에 자금을 대거 풀어 금리를 낮췄으나 낮아진 금리가 어떤 일을 했는지는 증거가 없습니다. 수조 달러가 은행에 풀렸는데 이 중 상당한 자금이 기업과 가계에 대출됐다는 흔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지요.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양적완화와 유사한 사례를 본 적이 없어 효과를 판단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
▼시장은 2차 양적완화와 관련해 '충격요법'이냐,'베이비 스텝(baby step)'이냐 하면서 FRB의 추가 자금 투입 규모를 점치고 있습니다.
"과거 사례가 없는 데다 모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도 그 효과를 불확실하다고 본다는 방증입니다. 정책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기는 곤란합니다. "
▼추가 부양을 놓고 통화정책을 쓰는 게 유리한지,재정정책을 쓰는 게 유리한지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재정정책은 통화정책과 달리 정치적인 바람을 탈 수 있어 다루기가 매우 어렵지요. 아무런 정책을 취하지 않는(do nothing) 제3의 방안도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이게 최선의 정책이라고 판단됩니다. 왜냐하면 미 경제는 그동안 위험 감수를 꺼리는 활동들로 난타를 당해왔기 때문입니다.
즉각적인 경기 회복을 가져다주지 않겠지만 재정이냐,통화냐 논쟁한다면 저는 경제 자체와 시장이 스스로 치유토록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이 판단할 수 있게 하는 제3의 대안이지요.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부가 해결한다는 것과 다릅니다. 역사적으로 항상 시장이 치유했습니다. 세계 1차대전 이전에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하고 침체하는 사이클을 타기도 했지만 다시 회복하지 않았나요. 지난 100년 이상 동안 시장기능에 맡겨둬 치유되지 않았다는 증거는 없습니다. 미국만 해도 18세기 말 농업경제에서 1차대전 이전 산업경제기까지 정부는 거의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
▼자유시장주의자라고 불리시는 까닭을 알겠군요.
"최근까지도 자유시장경제의 여러 사례를 목격해 왔습니다. 한국을 얘기해 볼까요. 한국은 아무것도 이룬 게 없다가 수출 주도의 첨단기술 국가로 목표를 정하면서 아시아의 호랑이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 중국은 한국의 모델을 모방했습니다. 중국이 현재 어느 위치에 와 있나 측정해 보려면 20~30년 전 한국을 보면 됩니다. 자유시장경제에서 한국은 매우 중요한 사례입니다. 우연이 아니지요. "
▼중국의 개방경제와 금융위기 간 연관성을 지적하신 적이 있는데요.
"옛 소련이 붕괴한 후 급속한 신흥시장의 경제 성장으로 형성된 과도한 저축이 모두 소비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이 이런 현상을 주도한 가운데 세계적으로 저축액이 계획된 투자액을 훨씬 초과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 2006년 무렵 거의 모든 주요 국가에서 장기금리가 연 10%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낮은 장기금리는 주택을 포함한 부동산 가격을 밀어올렸습니다. 미국은 물론 20개 다른 국가들에서도 부동산붐이 일었습니다. 미국은 중간 정도였어요. 대부분 사람들이 (미국)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겼다고 믿는데 그렇지 않아요. 중앙은행이 조절하는 기준금리(은행 간 하루짜리 단기금리)를 보고 상업용 부동산에 장기 투자할 순 없습니다. 금융위기는 세계적으로 장기금리가 낮았기 때문이지 낮은 기준금리 때문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
▼미국과 중국이 환율전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제2의 플라자합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직 위험수준에 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환율전쟁은 내가 이익을 보면 상대방은 손실을 보게 되는 제로섬 게임입니다. 상호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돼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의제로 오르겠지만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요. 환율이 정치적인 도구이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합의로 인해 어떤 결과가 반드시 생기지 않는다는 점도 흥미롭지요.
시장은 합의가 나오기 전에 방향을 전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1985년 뉴욕 플라자합의도 그랬습니다. 환율이 막 고비를 넘기려던 참이었거든요. 기억하건대,그 합의를 높이 평가하는 너무 많은 과장이 있지 않았나 합니다. 플라자합의 결과로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미국과 다른 어느 나라도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재무장관들이 시장을 향해 "방향을 바꿔"라고 명령하면 시장이 'yes,sir'하고 반응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게는 되지 않아요. 각국마다 어려운 국내 정치사정이 있습니다. "
▼미국 정부의 금융감독개혁법이 또 다른 금융위기를 방지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의문스럽습니다. 금융위기는 예상치 못하게 자산가격이 급락하는 현상입니다. 그게 예상된다면 위기가 발생하지 않겠지요. 2007년 봄 이전,세계적으로 다음 위기의 원인은 미국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와 달러가치라는 통념이 지배했습니다. 그런 전반적인 시각 탓에 2003~2004년 대규모의 달러 순매도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2007년이 되자 매매 불균형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달러가치,경상수지 적자가 위기와 상관이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없지 않습니까.
1996년부터 주식시장에서도 투기가 일기 시작했지만 4년이 지나서야 판명됐습니다. 주택시장 붐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FRB 의장으로 재직할 때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모기지(주택담보대출)의 급격한 증가를 두고볼 순 없다고 발언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수년 동안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언제 위기가 닥칠지 예측할 방도는 없다고 봅니다. "
▼예방적인 차원에서 금융시장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면 되지 않나요.
"금융사들이 보다 많은 자본을 축적하도록 해야 합니다. 너무 많은 규제를 가하면 대출긴축이 일어나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유용한 파생상품과 대출을 죄다 제거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지요. 2008년 이후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는 사라졌어요. 한 건의 대출도 없습니다. 이 상품의 원리금을 갚을 능력이 있는 잠재 수요자들마저 규제 때문에 대출받을 길이 막혀버린 것입니다. "
▼미국에서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한 이후 한국 금융업계는 투자은행업 육성에 고민이 많습니다.
"충분한 자본과 담보요건을 갖추면 한국 금융사들이 어떤 상품이라도 판매할 수 있고,또 판매해야 한다고 봐요. 리먼 브러더스가 (위험자산 대비) 자본을 3%가 아닌 15%를 갖췄다면 지금 살아 있을 겁니다. 충분한 자본이 있다는 것은 부도가 날 염려가 없다는 얘기입니다. 부도가 없으면 위기의 전염이나 금융위기도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산가격이 급락하더라도 말입니다. "
워싱턴=김홍열 특파원 comeon@hankyung.com
◆ 27일 인재포럼서 기조연설
앨런 그린스펀(84)은 로널드 레이건,조지 H 부시,빌 클린턴,조지 W 부시 정부 때 18년6개월 동안(1987~2006년) FRB 의장을 지냈다.
유대계인 그린스펀은 미 줄리아드음대에서 클라리넷을 1년간 공부하다 중퇴한 뒤 클라리넷과 색소폰을 불며 전문 재즈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다. 숫자에 밝았던 그는 이후 뉴욕대 경제학과에 진학해 학사,석사,박사학위를 받았다. 계량경제에 눈을 뜬 덕분에 타운센드 그린스펀 경제컨설팅 회사를 운영하면서 부(富)를 쌓았다. 철강산업 관련 통계 분석으로 1958년 불경기를 경고할 수 있었다.
그린스펀은 정교한 수사를 사용해 통화정책을 제시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96년 12월 워싱턴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주최한 만찬장에서 '비이성적 과열(irrational exuberance)'이라는 내용의 연설로 증시 과열을 경고했다. 다음 날 뉴욕 다우지수는 2% 급락했다. 일본 도쿄와 홍콩 증시도 각각 3% 폭락했다.
그린스펀 전 의장은 오는 27일 한국경제신문 등이 주최하는 '글로벌인재포럼2010'에 연사로 참여,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와 기조대담을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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