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빠른 속도로 하락해 저성장 추세가 굳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 4%에도 못 미치는 성장률로는 한국 경제가 10년 후에도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을 넘지 못한 채 선진국 문턱에서 맴돌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우려다.


◆외환위기,금융위기 거치며 하락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7~8%를 유지했던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하락한 결정적 계기는 1997년 외환위기였다.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기업이 부도를 낼 정도로 심각한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투자 심리가 얼어붙었다. 대규모 실업이 발생해 노동 투입도 위축됐다.

2008년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한 차례 잠재성장률이 떨어지는 계기가 됐다. 황종률 국회 예산정책처 경제분석관은 "불황으로 설비투자가 줄면서 자본 축적이 감소했고 실업률 상승으로 노동 공급이 둔화했다"며 "구조조정이 지연되면 총요소 생산성마저 떨어져 잠재성장률 하락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에는 추정 기법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잠재성장률이 3%대로 떨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지난해 잠재성장률이 3.8%로 떨어졌다고 분석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잠재성장률이 추정 방식에 따라 2.8~3.5%로 나왔다고 밝혔다.

잠재성장률 하락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2011~2015년의 연평균 잠재성장률을 3.5%로 전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12~2025년 한국의 평균 잠재성장률을 2.4%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투자 및 고용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저출산 · 고령화로 머지않아 생산가능인구까지 감소,잠재성장률 하락세가 가팔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통계청의 장래 인구 추계에 따르면 한국의 인구는 2018년 493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다.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이보다 2년 앞선 2016년 3619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점차 감소할 것으로 전망됐다.

◆경제체질 개선 시급

한국보다 앞서 잠재성장률 하락을 경험한 선진국들도 경제 전반의 체질 개선을 통해 성장의 불씨를 되살린 사례가 있다.

미국은 1980년대 초 1%대로 하락한 잠재성장률을 감세와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레이거노믹스(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의 경제정책)를 통해 3%대 후반까지 끌어올렸다. 또 1990년대에는 2%대로 떨어졌던 잠재성장률을 정보기술(IT) 부문의 혁신을 통해 3%대로 높이면서 10여년에 걸친 호황을 누렸다.

영국도 1980년대 1% 미만으로 떨어졌던 잠재성장률을 감세와 국영기업 민영화 등의 조치를 통해 2%대로 높였다.

반면교사는 이웃 일본이다. 일본의 잠재성장률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4%대 초반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높았지만 1990년대 버블 붕괴와 함께 급락,최근 0%대로 하락했다. 기업 투자와 인구가 줄어든 탓이 크다.

일본의 설비투자는 1980년대 후반 매년 10% 이상 증가했으나 1990~1996년에는 증가율이 2.9%로 떨어졌다. 1990년대 후반에는 상황이 심각해져 1997~2003년 설비투자 증가율이 0%로 하락했다. 인구도 줄어 노동의 잠재성장률 기여도가 1990년대부터 마이너스로 떨어졌다는 것이 일본은행의 분석이다.

일본의 보수성과 복잡한 규제도 잠재성장률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전 세계적으로 아웃소싱이 일반화됐는데도 일본 기업들은 대부분 독자적인 연구 · 개발(R&D)에 주력하면서 설계 생산 판매의 전 과정을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다. 복잡한 규제는 신생 기업의 출현을 어렵게 한다. 미국에서는 6개의 행정절차를 거쳐 6일 만에 창업이 가능한 것에 비해 일본에서는 8개의 단계를 거쳐 23일이 지나야 창업을 할 수 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 잠재성장률

경제에 투입되는 요소인 자본 노동과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뜻하는 총요소 생산성을 합해 산출한 적정 경제성장률.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을 일으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