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고 조금만 답답하면 소리지르고…도대체 왜 그럽니까?"

이틀째를 맞은 국정감사장에서 만난 공정거래위원회의 한 공무원이 내뱉은 하소연이다.

국감 때가 되면 국회는 도떼기 시장이 된다. 기자실 앞 복도는 보도자료를 뿌리기 위해 찾아온 의원 보좌진들로 북적댄다. 자료에 들어간 용어들도 '부패 적발''부실 집행' 등 자극적인 것들이 많다. 피감기관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어렵다. 몇몇 기자들은 한 야당 의원을 지칭할 때 이름 앞에 꼭 '버럭'자를 호(號)처럼 붙여서 부르기도 한다. 걸핏하면 "사과하세요"라며 고함을 지르기 때문이다.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매년 똑같은 자료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주제는 정부의 국가부채관리가 소홀하다는 것.그 의원은 이번에도 50쪽이 넘는 자료를 냈지만 새로운 내용은 없다. 이 같은 행태를 지켜보고 있으면 왜 일각에서 '국감 무용론'이 나오는지를 이해할 법도 하다.

하지만 취재차 통화한 공무원 생활 25년차인 한 기관장에게 이런 생각을 전하니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그는 "오랜 공무원 생활 결과 운영상의 흠집을 이유로 국정감사 자체의 당위성을 부인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국감은 행정부의 권한 남용과 일탈을 견제하는 중요한 수단이고,그래서 역사적으로도 독재정권이 가장 수용하기를 꺼렸던 제도"라고 말했다.

또 나름대로 내실있는 국감을 준비해 작지만 의미있는 개혁을 가능케 하는 이들도 있다. 조윤선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유흥주점에서 법인카드를 사용하고선 '복리비'로 분류한 것을 밝혀냈다. 같은 당 손숙미 의원도 국립병원의 연구 · 개발 예산이 의사들의 개인 생활비나 유흥비로 사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신병 환자들을 위한 임상연구비가 마트 장보기,입시학원비 등의 비용으로 처리됐다는 영수증을 제시했다.

국회의 권위가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국민의 신뢰도 추락했지만 이런 사실들을 밝혀내는 것만으로도 국감의 존재가치는 부인할 수 없다.

박신영 정치부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