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가격을 놓고 대립각을 세워왔던 소비자단체와 정유사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소비자단체는 국내 휘발유 가격이 국제 가격에 비해 비싸게 책정됐다며 정유업체들과 평소 갈등을 빚었지만,보일러 등유 문제에 대해선 정유사와 같은 논리를 펴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소비자시민모임(소시모)은 보일러 등유가 유사 경유로 쓰이면서 3년 동안 9000억원가량의 세금이 새나갔다며 보일러 등유를 없애고 실내 등유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27일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보고서도 내놨다.

보일러 등유는 1998년 정부가 부족한 등유의 수요를 줄이고 경유 사용을 늘리기 위해 둘을 절반씩 배합해 새로 만든 유종이다. 서민 난방용으로 만들어져 교통세가 붙지 않지만 경유의 특성을 가져 차량용 연료로도 쓸 수 있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유와 등유의 세금 차이가 커지자 보일러 등유를 넣어 세금을 탈루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도시가스 등의 확산으로 2000년부터 2007년 사이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던 보일러 등유 소비는 2008년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매년 평균 22% 가량 늘고 있다.

소시모 측은 "보일러 등유를 차량에 사용하면 환경오염뿐 아니라 자동차 기능 장애,석유시장 왜곡 등 사회적 피해를 유발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정유사들이 불법 석유 유통업체들을 뿌리 뽑는다며 보일러 등유를 자발적으로 단속할 때 내세운 논리와 동일하다. SK에너지는 SK네트웍스와 공동으로 태스크포스(TF)를 구성,보일러 등유의 유통 경로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보일러 등유를 경유로 속여 팔다 적발된 주유소에 대해선 계약을 해지하는 등 강도 높게 대응하고 있다.

석유관리원의 한 관계자는 "예전엔 공청회에서 서로 눈도 마주치지 않던 소비자단체와 정유사가 서로 같은 입장에 서면서 각종 행사 때 분위기도 한층 부드러워졌다"고 전했다.

조재희 기자 joyja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