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애플 최고경영자(CEO),마크 허드 오라클 사장,레오 아포테커 휴렛팩커드(HP) CEO.이들은 기업용 소프트웨어업체 오라클의 창업자 래리 엘리슨이 최근 경쟁사 HP를 상대로 퍼부은 독설에 등장한 화제의 인물들이다. '과거 실패한 CEO'라는 딱지가 붙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엘리슨은 오랜 친구인 허드가 회계 조작과 성추문 스캔들로 지난달 HP CEO 자리에서 쫓겨나자 뉴욕타임스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오래 전 애플이 스티브 잡스를 해고한 이후 최악의 인사 결정"이라며 HP를 비난했다. 엘리슨은 이후 허드를 오라클 공동사장으로 영입했다.

이어 HP가 새 CEO로 오라클의 라이벌인 독일 SAP의 CEO 출신 아포테커를 영입하자 엘리슨은 월스트리트저널에 이메일을 보내 "HP는 내부의 훌륭한 후보들을 제쳐두고 SAP를 잘못 경영해 해고된 인물을 골랐다"며 또 한번 HP의 심기를 건드렸다. 아포테커는 2008년 4월 SAP의 공동 CEO가 됐고,지난해 7월부터 단독 CEO를 맡아오다 올초 전격 해임됐다.

엘리슨은 실패한 CEO에 대해 엇갈린 평가를 내렸지만 컨설팅업체 크리에이티브스트래티지의 팀 바자린 사장은 "잡스가 실패의 경험을 겪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실패의 가치를 중시했다. 잡스는 '사용하기 쉬운 PC'란 모토를 내걸고 만든 매킨토시의 부진 등으로 1985년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라는 회사를 창업했다. '사용하기 쉬운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개발했지만 대당 6000달러가 넘는 고가로 기업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면서 잡스는 7년간 5만대 판매를 끝으로 하드웨어사업을 접어야 했다. 넥스트는 소프트웨어사업만 하다 애플의 협력업체로 전락했고,잡스는 1997년 애플로 복귀했다.

랜달 스트로스 미 새너제이주립대 교수는 잡스가 12년간 넥스트를 경영하면서 남의 말을 듣지 않고 모든 일을 일일이 다 챙기는 경영스타일로 어려움을 겪었다며 잡스가 애플에 계속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애플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넥스트의 부사장 9명 중 7명이 1992년과 1993년 해고되거나 스스로 떠났다. 잡스는 사무실 인테리어까지 직접 챙길 정도였다. 임원들과 함께 찾은 빌딩 앞에서 잡스가 조경을 하는 인부에게 스프링클러의 위치가 잘못됐다고 설교하느라 임원들이 20여분을 기다린 일화도 그의 경영스타일과 무관하지 않다.

넥스트의 거래처였던 비즈니스랜드의 임원 출신 케빈 콤프톤은 애플로 복귀한 잡스가 최고를 추구하는 열정은 예전과 같았지만 비전을 어떻게 실현할지를 이해하는 기업가로 변신해 있었고,모든 것을 스스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 이후 실적 부진 등으로 옷을 벗는 CEO가 줄을 잇고 있지만 그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제부 차장 kjo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