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서울 청진동의 한 맥줏집.문인들이 즐겨 찾던 이곳에는 7~8명의 아가씨가 예쁜 유니폼을 입고 손님들의 시중을 들며 인기를 끌었다. 그 중 한 명은 소설가 이문구씨를 유난히 좋아했다. 그녀의 눈에는 그리움과 애달픔이 묻어났다. 그러나 이씨는 무관심하고 무뚝뚝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집안 사정으로 시골집에 내려가게 됐다는 것.하지만 그녀는 옛 동료들을 통해 이씨의 안부를 묻고 애틋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눈이 많이 내린 겨울 어느 날,이씨는 그녀의 집주소를 적어 들고 경기도 남쪽 끝 마을로 찾아갔다. 갓난 조카를 업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고는 폭설을 맞으며 읍내까지 걸어나가 음식을 사먹이며 사무친 그리움을 달래주었다.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펑펑 쏟았고….

그 시절 문학담당 기자로 이름을 날리던 문학평론가 정규웅씨가 《글 속 풍경 풍경 속 사람들》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다. 작고한 소설가 이문구씨는 문인들에게도 '늘 보고 싶은' 대상이었다.

이 책에는 김현,김승옥,이청준,김주연,김광규 등과 함께 문학의 꿈을 꾸던 대학시절 얘기부터 중앙일보 문학기자로 문인들과 뒹굴던 10년간의 추억 등 한국문단의 이면사가 풍성하게 펼쳐져 있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