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유럽문학 최고 · 최대의 서사시로 손꼽히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호메로스에 따르면 전쟁은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스파르타의 아름다운 왕비 헬레네를 유혹해 보물까지 훔쳐 달아나는 바람에 일어났다.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앞바다에 상륙해 헬레네와 보물을 그녀의 남편인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에게 돌려줄 것을 요구했지만 트로이인들은 거부했다. 이후 9년 동안 그리스인들은 트로이 주변의 촌락과 인근 섬들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약탈했으나 트로이성 공격은 쉽지 않았다.

10년이나 계속된 전쟁에 동원된 트로이,그리스 양 진영의 병사는 적어도 20만명에 달한다. 영웅은 물론 신들도 총 동원됐고,트로이 침공에 동원된 그리스 함선도 1186척에 이른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통해 알려진 트로이 전쟁의 개요는 이 정도다. 이에 대해 고대 전쟁사 전문가인 배리 스트라우스 미국 코넬대 교수는 "우리가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던 것은 대개 틀렸다"고 단언한다. 《일리아스》의 대부분은 전쟁 9년째 와해 직전의 그리스군을 이끌던 총사령관 아가멤논과 전쟁영웅 아킬레우스,트로이군을 이끈 헥토르 왕자가 벌이는 마지막 나흘간의 전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 할애한다. 《오디세이아》는 전쟁 이후가 배경이고,주로 영웅 오디세우스의 고된 귀향길을 그렸다.

따라서 호메로스를 통해 전쟁의 실체를 파악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스트라우스 교수는 신간 《트로이 전쟁》에서 최근의 새로운 고고학 연구와 발굴 성과를 토대로 호메로스의 저작에 거의 전적으로 의존해온 트로이의 역사와 실체를 새롭게 조명한다. 호메로스의 실수와 과장,왜곡을 바로잡으면서 그리스와 트로이 진영이 구사했던 전략과 전술,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과 함께 창과 방패가 부딪치고 화살과 돌맹이가 비오듯 날아드는 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저자는 우선 헬레네는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라 서서히 표면화되고 있던 그리스와 트로이의 갈등에 불을 붙인 계기였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그리스인들은 청동기 시대의 바이킹이었으며 사상 최초로 전함을 만들어 에게해 너머로 진출했다. 기원전 1400년께부터 그리스는 에게해 남동부 섬과 연안의 아나톨리아, 도시 밀레투스,키프로스로 진출했고,기원전 1200년대에는 에게해 북동부 섬들로 밀고 들어와 트로이에 큰 위협이 됐다. 기원전 1200년께에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은 이처럼 큰 퍼즐의 한 조각일 뿐이라는 얘기다.

또 호메로스의 기록과 달리 전쟁은 10년씩이나 계속되지 않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제한된 자원을 보유한 청동기 시대 전쟁 수행능력으로는 10년에 걸친 대규모 원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것.

그리스군이 트로이성을 포위했다는 것도 가능성이 없는 이야기로 일축한다. 그리스군은 수적으로 트로이군의 상대가 되지 않아 계략을 써야만 트로이를 함락시킬 수 있었으며,그 계략이 '트로이의 목마'였을지도 모른다고 추정한다. 아울러 '트로이 목마'는 그리스 특공대를 트로이성으로 들여보내기 위해서라기보다 트로이군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기 위한 유인책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유명한 아킬레우스의 발꿈치 이야기도 나중에 덧붙여졌을 것으로 본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인 테티스가 갓난 아들을 스틱스강에 담가 불사신으로 만들었지만 자신이 쥐고 있던 발뒤꿈치만은 유일한 약점으로 남았다는 이야기가 《일리아스》에는 없다는 것이다. 옮긴이의 말대로 신화와 영웅 서사시의 소재가 아니라 청동기 시대 '전쟁의 얼굴'로서 트로이 전쟁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