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할당하는 방안은 한나라당에서조차 포퓰리즘 논란을 빚었던 정책이다. 하지만 홍준표 한나라당 서민대책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이 안의 법제화를 강력 추진하자 은행연합회가 "법제화 추진을 중단하면 은행권이 자율적으로 의무 비율을 맞추겠다"고 백기를 들며 시행을 눈앞에 두게 됐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은행연합회가 은행들로부터 사전 동의를 구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특히 은행들은 일정 목표를 정해 서민대출에 나서도록 하는 것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고 기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관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홍준표 "우파 포퓰리즘 보여주겠다"

홍 의원은 7월 서민정책특위를 출범시키면서 줄곧 "은행들이 의무적으로 이익의 일정 부분을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과 중소기업에 대출하는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해왔다.

홍 의원은 "미국이 1990년대부터 시행한 지역재투자법(CRA)은 저소득층과 신용도가 낮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대출할당제"라며 "미국 같은 자본주의 첨단을 달리는 나라에서도 대출할당 강제법이 있지만 외국인 투자자가 빠져 나간다고 이 법을 저지한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들이 위기를 겪을 때마다 국민들이 혈세로 보전해주는데 정작 은행은 자기자본비율(BIS)을 내세워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에게 대출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은행의 공적기능을 회복시킨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은행 "의무화는 기업자율 침해"

은행들은 은행연합회가 만든 '새 서민금융상품 도입방안'이 말이 자율이지 실상은 '강제'나 다름없다는 반응이다. 은행별로 전년 영업이익의 10% 수준에서 매년 서민대출 목표액을 정한다는 것 자체가 의무비율을 설정하는 것이라는 얘기다. 한 은행 고위관계자는 "이는 기업의 자율활동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은행 고위 임원은 "사실상 상부기관으로 군림하고 있는 은행연합회가 은행의 주된 영업행위인 대출에 대해 규제를 가하는 것인 만큼 헌법에 위배될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절차에서 있어서도 문제가 상당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A은행장은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서민대출에 쓰도록 하는 방안에 대해 사전에 은행연합회로부터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은행들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은행연합회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이란 얘기다. B은행장은 "은행연합회가 안을 마련했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은행들이 공동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10월4일 은행장 회동에서 은행연합회의 방안이 채택되지 못할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이와 관련,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권의 서민대출 상품인 희망홀씨대출이 은행 영업이익의 10%를 웃돌고 있으며 서민대출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차원에서 방안을 만들었다"며 "앞으로 은행장 부행장 회의 등을 통해 은행권 전체의 동의를 받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태훈/박신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