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 태교·음악치료 '과학적 근거'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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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의대 '뇌-소리' 관계 규명
피아노 건반처럼 특정 音마다 뇌가 인식하는 부위 달라
정신분열증·주의력 결핍 등 신경치료 실마리 제공
피아노 건반처럼 특정 音마다 뇌가 인식하는 부위 달라
정신분열증·주의력 결핍 등 신경치료 실마리 제공
임신부의 태교와 태아 머리에 좋은 음악은 과학적 근거가 있을까. 이를 입증하려면 특정 청각 자극이 임신부를 거쳐 어떻게 태아의 뇌로 전달되는지 규명해야 한다. 신경과학적으로는 엄밀히 증명되지 않은 음악치료(music therapy)도 마찬가지다. 서울대 의과대 및 뇌과학 · 인지과학협동과정 연구진은 음악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정교한 전기적 자극이고, 뇌가 반응하는 부위도 음마다 천차만별인 사실을 밝혀냈으며 관련 논문을 준비 중이다.
◆피아노 건반같이 음을 인식하는 뇌
뇌와 청각 자극의 관계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뇌자도(Magnetoencephalography:MEG)를 이해해야 한다. 뇌의 신경세포는 전기적 신호를 주고 받으며 교신한다. 즉 전류가 흐르면 주변에 일정 방향으로 자기장이 생기는(암페어의 법칙) 원리에 따라 뇌에서도 자기장이 생긴다. 그런데 이 자기장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구 자기장 크기의 100만분의 1 수준인 100~1000펨토(femto:10의 15 제곱분의 1) 테슬라(tesla)에 불과하다. 따라서 초전도체로 만들어진 특수 센서를 통해서만 측정할 수 있는데 이를 뇌자도라고 한다.
연구진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보유한 뇌자도 장치를 활용해 밀리세컨드(ms:1000분의 1초) 수준에서 청각 자극에 따른 뇌자도의 변화를 연구해왔다. 세계적으로 100여대에 불과한 이 장치는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각종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으며 심전도같이 뇌자도를 그려준다.
연구진은 특정 청각 자극을 MEG 장치의 각각 다른 306개 채널을 통해 뇌자도를 측정하고 이를 평균한 뇌 자기장 그래프를 도출했다. 그리고 이를 PET 영상 등과 겹쳐 연구해 청각 자극이 정확히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하는지 밝혀냈다. 예를 들면 특정 옥타브의 '미'음과 이보다 한 옥타브 높은 '미'음이 뇌의 어떤 부위를 자극하는지 규명했다는 얘기다.
설재호 서울대 인지과학협동과정 · 서울대병원 MEG센터 연구원은 "피아노 건반처럼 뇌에서도 특정 소리를 인식하는 부분이 전부 구분돼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정신분열증 등 정신질환 치료에도 응용
이번 연구 결과는 '음악은 문화적인 청각 자극'이라는 우리 상식과 배치된다. 연구진은 "귀에 거슬리는 소리와 조율이 잘 된 음을 구분하는 시간은 30ms 정도"라고 밝혔다. 나아가 피아노 연주곡과 흑백 TV의 채널을 돌릴 때 '치~'하고 나오는 백색 잡음을 구분하는 시간은 100ms에 불과하다고 한다. 즉 특정 잡음과 음악을 구분하는 것은 몇 초간 들어서 이성적으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수백밀리세컨드 만에 이미 뇌가 판단을 내리는 전기적 신호라는 것이다.
뇌자도 측정은 특정 감각기관(귀,눈 등)에 이상이 생긴 것인지,뇌 신호 처리에 문제가 생긴 것인지,아니면 둘 다인지 확인하는 의학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이와 함께 연구진은 뇌자도 분석을 통해 정신분열증이나 아동에게 주로 나타나는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진단하고 치료의 실마리를 찾아낼 방법도 연구 중이다. 시간에 따라 자극에 반응하는 미세한 뇌 전기 양상을 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주의력 결핍을 확인할 수 있고, 정신분열증의 특징인 환청 · 환각 · 와해된 언어 등이 뇌의 어디에서 비롯하는지 기초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천기 서울대 의대 신경외과 교수는 "소리를 듣는 것은 생존을 위한 가장 원초적인 생물학적 반응"이라며 "청각과 뇌의 관계 연구는 의외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나 정확히 규명되면 여러 분야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