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인 22일(현지시간) 오전 7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플랫폼에 서 있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을 만나고자 베를린으로 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윤 장관은 "정신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추석을 챙길 틈이 없다"며 "고생하는 직원들하고 송편이라도 나누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전날에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한 · 러 경제공동위원회를 마친 뒤 곧바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독일 석학들과 라운드 테이블 회의를 주재하고 악셀 베버 분데스방크 총재와 장 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연이어 면담하는 등 자정이 넘도록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윤 장관이 추석 연휴를 반납하고 지구 한바퀴를 도는 10박12일 해외 출장 강행군을 하고 있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핵심의제를 둘러싸고 주요국들과 이견을 좁히기 위한 설득 작업에 나선 것.지난 18일 출국해 러시아를 시작으로 독일 프랑스 브라질 미국 등 5개국을 방문한다. 이번 출장은 비행시간만 50시간에 달한다.

윤 장관은 첫 방문지인 러시아에서는 V F 바사르긴 지역개발부 장관 등과 만나 "11월 서울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신흥국의 입장이 더욱 잘 반영되는 '공정한 지구촌' 건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러시아의 지지를 당부했다. G20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한국이 주도적으로 제기한 '글로벌 금융안전망 구축'과 '경제 개발'이슈에 대한 협조도 부탁했다. 한 · 러 경제공동위에서는 푸슈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처음부터 끝까지 즉석에서 암송해 러시아 측 참석자들로부터 박수 갈채를 받았다.

윤 장관은 이어 독일을 방문,베버 총재를 만나 "신흥개도국 등을 위해 위기예방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글로벌 금융안전망 도입과 관련,독일이 협력해 줄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베버 총재는 이에 대해 "서울 G20 정상회의까지 IMF 쿼터 개혁을 완료할 필요성에 공감한다"는 뜻을 내비쳤다. 쇼이블레 재무장관과의 두 시간에 걸친 면담에서도 IMF 지분 개혁이 서울 G20회의에서 마무리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냈다.

재정부 관계자는 "독일 관계자들은 G20 의장국인 한국의 재정부 장관이 바쁜 와중에 직접 찾아준 점에 대해 크게 고마워했다"며 "주요 의제에 대한 우리나라의 입장을 최대한 존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고 전했다.

윤 장관은 23일에는 내년 G20정상회의 개최국인 프랑스로 이동,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과 크리스티앙 누와이에 중앙은행 총재를 잇따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윤 장관은 프랑스가 내년 정상회의 주요 의제로 추진 중인 국제통화시스템 개혁과 서울 정상회의의 금융안전망 구축 이슈의 상호 연계방안을 협의했다.

윤 장관은 이어 24일에는 브라질로 건너가 귀도 만테가 재무장관 등을 만나 금융안전망 구축과 IMF 개혁에 협조를 당부할 예정이다. 27일에는 티모시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 등을 연쇄 면담하고 29일 귀국한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