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예금금리 일제히 인하] "대출할 곳 마땅찮아…예금 줄이려고 금리인하 핑퐁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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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 커진 시중銀 자금부장
한 시중은행 자금부의 A부장은 요즘 아침 보고를 받을 때마다 골치가 아프다. 예금은 많이 들어오는데 대출은 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A부장은 "시중은행들이 금리를 내려가며 '핑퐁'을 치고 있다"며 "지금으로서는 최상의 자금운용이 가급적 고금리 거액 예금을 안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꺼번에 많은 돈을 예치하겠다는 기업들도 많다"며 "고객 관리 차원에서 예금을 받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 난감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돈 빌려줄 데가 없다
예전에 은행 자금부장들의 고민은 '대출처는 많은데 빌려줄 돈이 모자란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채권을 발행하거나 콜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자금부장들은 '어떻게 하면 예금을 줄이고 대출을 늘릴까'라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은행들이 돈을 빌려줄 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은 통계에서도 나타난다. 우리은행의 지난달 대출 잔액은 134조4940억원으로 전달에 비해 7600억원 줄었다. 국민은행의 대출 잔액은 2348억원,하나은행 대출 잔액은 1490억원 각각 감소했다.
서남종 국민은행 자금부장은 "지난해 정부가 중소기업 유동성 지원프로그램을 시행하며 돈을 빌려줄 만한 우량 중소기업들은 다 받아갔다"며 "가계대출 쪽에서도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완화됐다고 하나 앞으로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아 대출이 일어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은행들은 돈을 빌려줄 곳은 없는데 예금이 계속 늘어나자 금리를 내리며 예금 잔액 관리에 들어갔다. 4대 시중은행 월별 예금 증가액은 4월 2조3241억원,5월 3조5022억원,6월 3조4238억원,7월 1조5222억원 등 계속 늘었다. 은행들이 금리를 내리는 등 예금 관리에 나서면서 8월 예금은 3조397억원 감소했으나 대출 수요도 덩달아 줄어 자금과잉 문제는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한 시중은행 자금부 관계자는 "8월부터 각 은행들이 예금 금리를 인하하며 자금 관리에 들어갔다"며 "소액 예금은 받고 있지만 법인고객 등이 거액을 맡기는 예금은 이자를 적게 주는 방법 등으로 '밀어내기'를 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통안채 적극 매입
은행들은 자금이 남아돌자 통화안정증권(통안채)과 국고채 등을 적극적으로 매입하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실시한 91일물 통안채 입찰에선 1조4300억원 모집 목표를 30% 가까이 웃도는 1조7600억원의 자금이 응찰했다. 한은은 추가 발행한도인 10%를 다 채워 총 1조4300억원 규모의 91일물 통안채를 은행들에 매각했다.
182일물 통안채 입찰에서도 6000억원 모집에 1조1100억원이 들어왔다. 최종 발행규모는 6600억원으로 확정됐다. 금리는 91일물 통안채가 연 2.4%,182일물이 연 2.65% 적용됐다. 한은 관계자는 "안전자산 선호현상이 여전해 은행에 자금이 집중되고 있다"며 "대출할 곳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은행들이 채권 등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전했다.
◆앞으로가 더 걱정
자금부장들의 더 큰 고민은 앞으로도 대출이 크게 늘어날 요인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원덕 우리은행 자금부장은 "경기가 좋지 않고 리스크 관리도 해야 하기 때문에 대출 자산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며 "앞으로도 주택경기 등이 쉽게 나아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고민이 줄어들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김태우 하나은행 자금부장은 "추석을 맞아 기업대출은 일시적으로 늘었지만 개인대출은 전혀 증가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라며 "총 대출 중 가계대출이 절반 정도인데 금리를 계속 낮출 수도 없어 고민이 많다"고 털어놨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한국은행이 다음 달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지금과 같은 경기 상황에서는 대출이 크게 늘 것 같지 않다"며 "내년 상반기까지 지금과 같은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정재형/이호기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