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저녁 8시를 막 넘긴 시간,서울 남산의 국립극장 안 해오름극장.피켓을 든 국립극장 예술단체 노조원들이 로비에서 관객들에게 유인물을 나눠줬다. 공연이 30분 늦어질 것이라는 안내문이었다. 관현악단 소속의 한 노조원이 로비에서 모듬북 타악 연주에 나섰지만 일부 관객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스피커에선 "노조가 쟁의에 나서 공연이 지연되고 있다"는 극장 측의 안내방송이 연이어 흘러나왔다.

약 25분 뒤 국립무용단의 '코리아 판타지-Soul,해바라기' 공연이 무대에 올랐다. 예매자 중 387명이 공연을 봤고 51명은 현장에서 혹은 사전에 전화로 환불을 요청했다.

국립극장과 노조원들의 충돌이 일단 최악의 국면은 피한 양상이다. 전날에는 아예 공연이 파행으로 끝나 500여명의 관객이 모두 관람료를 반환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전날 극장 측은 노조가 아무런 통보도 없이 파업에 나섰다고 비난했고,노조 측은 사전에 '30분 지연 공연 쟁의'를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극장 측이 비노조원들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10여분간 공연을 진행하다 멈춘 것이라고 맞섰다.

양측이 격하게 맞서는 이유는 오디션과 성과급 지급 문제다. 극장이 경쟁을 통해 공연예술의 질을 향상시키겠다며 "최소 1년에 한 번 오디션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연봉에 기본급 70%,성과급 30%의 비율로 반영하겠다"고 하자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조영규 노조위원장 직무대행은 "오디션과 성과급 도입,정년 및 연가 축소 등에 합의했는데도 극장 측은 원안만 고수하고 있다"며 "2년에 한 차례 오디션 실시,성과급 비율 10%에서 더 양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적자에서 벗어나 경제적 자립과 경쟁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해 온 극장 측은 "이번만큼은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노조의 기선을 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완전한 연봉제 도입과 법인화 가능성을 생존권 박탈이라고 주장하는 노조원들은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며 버티고 있다.

'공연'은 예술인가 상품인가,예술단체의 연주자와 배우 · 무용가는 예술가인가 노동자인가 하는 논쟁은 올해 내내 문화계 전반을 덮치고 있다. 국립극장 노사는 모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항변하며 단체협상을 결렬시켰다. 피해는 늘 애꿎은 관객들의 몫일 뿐이다.

문혜정 문화부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