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SO)가 지상파방송을 재전송하는 것을 금지하라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방송대란이 우려되고 있다. KBS,MBC,SBS 등 지상파 채널들을 더 이상 케이블을 통해 시청할 수 없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파국을 피하려면 케이블TV가 유료방송 요금을 올리거나 일반 방송채널(PP)에 주던 수신료 중 일부를 떼어내 지상파에 재전송료로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PP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케이블TV가 재송신료를 지불하면 PP들의 수신료 수입은 더욱 줄어 지상파와 PP 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보고 있어서다.


◆지상파방송 대란 벌어지나

8일 법원의 판결에 따르면 케이블TV는 지난해 12월18일 이후 가입한 디지털케이블방송 가입자에 대해 지상파 재전송을 중단해야 한다. 대상자는 40여만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310만명에 이르는 디지털 케이블방송 가입자 전원이 지상파방송을 시청할 수 없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12월18일 이후 가입한 사람들은 40여만명이지만 기술적으로 기존 가입자와 분리해 방송을 송출하기 어렵다"며 "판결 이행을 위해서는 모든 디지털케이블방송 가입자에게 송출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케이블TV들은 이번 판결이 난시청 해소 등에 기여해온 케이블TV의 역할은 고려하지 않은 채 지상파방송의 저작권만 인정했다고 주장한다. 국내 가구의 80% 수준인 1500여가구가 케이블TV를 통해 지상파방송을 시청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실태조사에 따르면 아파트의 46.1%,연립주택의 8.2%,단독주택의 12.6%에서만 지상파방송 직접 수신이 가능하다. 케이블TV에 가입하지 않고는 상당수 가구에서 지상파방송을 시청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케이블TV들은 케이블망을 확대하는 비용을 전액 부담했다. 이로써 시청권역이 확대됐고 지상파들의 광고 수입이 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동안 시청권역 확대로 얻은 수입 증가분을 케이블TV에 돌려줘야 하는 소송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케이블TV · PP · 지상파 모두 '손해'

케이블TV가 지상파 재전송을 중단하면 케이블TV와 지상파방송 모두 손해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케이블TV는 IPTV 위성방송 등 경쟁 유료방송에 가입자를 빼앗길 수 있다. 지상파는 시청 권역이 줄어들어 광고 수주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케이블TV가 지상파에 재전송료를 기존 수신료에서 지불한다면 영세한 PP들의 형편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케이블TV는 수신료 수입 1조1500억원 중 21%인 2400억원을 PP에 나눠줬다. 지상파들은 연간 총 350억원을 재전송료로 요구하고 있어 PP에 돌아갈 몫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방송업계 관계자는 "가난한 PP들의 몫을 부유한 지상파가 가져가는 꼴"이라며 "정부의 정책 부재가 이 같은 사태를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업계는 관련 사항을 논의하기 위해 이번 주말께 총회를 가질 예정이다. 사회적 파장이 큰 사안인 만큼 신중하게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방송요금 인상 논란

어쨌든 케이블TV는 지상파방송사들과 재전송 협상을 해야 할 입장이다. 지상파방송사들은 그동안 케이블TV에 가입자당 월 320원의 수신료를 요구해왔다. 2008년 말 출범한 IPTV가 가입자당 월 280원을 받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케이블TV 업계로서는 지상파방송사에 재전송 대가를 주기 위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지금은 디지털케이블 가입자가 310만명에 불과하지만 1500만 가입자가 디지털로 모두 전환하면 지상파 3사에 지불해야 할 대가가 연간 1700억원대에 이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료방송 요금이 가격상한제 규제를 받고 있어 인상이 쉽지는 않다. 방통위는 아날로그 케이블방송은 월 1만8000원,디지털 케이블방송은 월 2만6000원을 요금 상한선으로 못박고 있다. 게다가 KBS가 수신료 인상을 추진 중이어서 유료방송 요금을 올리는 것은 적잖은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국민들로부터 시청료를 걷는 KBS가 재전송료를 요구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케이블TV방송협회 관계자는 "세계적 공영방송인 NHK와 BBC는 수신료로 수익을 얻지만 케이블 재전송료는 받지 않는다"며 "국내 방송시장을 독과점하는 지상파방송이 재전송료까지 챙긴다면 방송시장의 불균형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혁/박영태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