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적십자 채널을 통해 쌀과 중장비,시멘트 등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대한적십자사가 100억원 규모의 대북 수해지원을 제의한 데 대한 역제안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꽉 막혔던 남북관계가 이번 일로 숨통을 트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무엇보다 북한의 이번 요청이 그동안 억류됐던 대승호와 선원 7명을 어제 오후 동해상을 통해 돌려보낸 조치와 동시에 나왔다는 점에서 그렇다. 지난 번 신의주 침수사태로 입은 피해 복구를 위한 필요성과 함께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 국면에서의 탈피, 후계체제 구축을 비롯한 체제 안정 등을 겨냥해 화해 제스처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정부는 북한의 요청을 수용할 것인지 고심 중인 모양이다. 요구 물품이 대한적십자사가 제안한 라면 등 긴급식량과 생활용품, 의약품 등과는 달리 군수물자로 전용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우리는 북측의 이번 요청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전향적으로 수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가뜩이나 식량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수해까지 겹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이 말이 아니고 보면 어느 때보다 우리의 도움이 절실한 실정이다. 이를 계기로 남북간 대화의 물꼬를 트는데 다소나마 도움을 줄 가능성이 있고, 오는 11월로 다가온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남북관계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필요도 크다. 게다가 정부는 2007년 북측 수해지원을 위해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쌀 10만t, 굴착기 50대, 시멘트 10만t, 철근 5000t 등을 지원한 전례가 있다. 다만 중장비와 시멘트 등을 지원할 경우 군사용으로 전용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을 받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강조해둘 것은 인도적 지원과는 별도로 아직 남북 당국간 대화를 본격화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점이다. 북한은 여전히 천안함 폭침 사건에 대한 책임을 부인하고 남측의 날조극이란 황당한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따라서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 한반도 비핵화 노력에 대한 진정성 입증 등 북측의 의미있는 태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남북 당국 간의 본격 대화는 그 이후 생각해도 늦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