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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외문화 기행] (17) 붉은 지붕·하얀 융프라우…붓 끝을 따라가면 베른은 음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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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스위스 베른

    화가 파울 클레의 숨결 가득한 도시
    16세기 정취 간직한 아레강 따라 걷다보면 예술의 향기에 흠뻑

    도시에서 성장한 아이와 시골에서 자란 아이의 차이는 뭘까? 가장 큰 차이는 도시 아이들은 시간의 흐름을 달력의 숫자를 통해 계량적으로 파악하는 데 비해 시골 아이들은 자연의 변화를 통해 시간을 느낀다는 점이다. 대지의 봄은 연녹색으로 다가와 여름엔 초록색이 되고 가을이면 붉은 색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겨울엔 무거운 옷을 벗어던지고 황토색 속살을 드러낸다.

    시간의 흐름은 색채 말고 소리로도 느껴진다. 봄은 개구리 소리,여름은 매미의 울음,가을은 귀뚜라미 소리,겨울은 매서운 바람 소리로 다가온다. 시골 아이들에게 자연은 색채요 소리인 것이다. 그래서 시골 사람과 도시인이 하나의 대상을 놓고 느끼는 정서적 스펙트럼은 하늘과 땅 차이다. 대부분의 서정 시인들이 자연의 품안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스위스 베른 근교에서 나고 자란 화가 파울 클레는 이런 대자연의 섭리를 일찌감치 깨우쳤던 인물이다. 주도인 베른을 중심으로 한 베른주는 평지지대인 '베르너 미텔란트'와 고지대인 '베르너 오버란트'로 이뤄져 있는데 고지대의 융프라우,묀히,아이거 3봉은 유럽의 지붕으로 사계절 내내 만년설로 뒤덮여 있다.

    융프라우는 저지대의 중심인 베른에서도 맑은 날이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흰색의 거대한 융프라우,그와 맞닿은 거대한 푸른 하늘과 녹색의 들판을 바라보면서 풀벌레와 바람의 속삭임을 듣고 자란 그에게 아름다운 시각적 풍경은 곧 아름다운 음악적 하모니이기도 했다. 그것은 둘로 나눌 수 없는 한 몸 같은 것이었다. 그의 회화가 갖고 있는 음악적 특성은 이런 성장배경 속에서 발아한 것이다.

    가정적 배경도 한몫 했다. 클레의 아버지는 음악학교 교사였고 어머니는 가수였기에 음악은 어려서부터 그의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됐다. 그는 7세에 바이올린을 켰고 할머니가 사다준 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부모의 권유에 따라 그는 음악가가 되기로 하지만 사춘기에 들어 화가가 되기로 마음을 바꾼다. 그의 눈에 쇤베르크의 무조음악으로 대표되는 현대 음악은 끝없는 퇴보의 터널로 들어선 것처럼 보였다.

    그는 그래서 화가에 자신의 미래를 걸기로 했다. 베른의 김나지움을 졸업한 후 베를린 미술학교에 진학하지만 그는 여전히 음악의 문턱을 기웃거렸다. 음악회에 가고,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주자로 활동,음악잡지에 비평을 기고하는 등 절반 이상의 시간을 음악에 쏟아 부어 그야말로 무늬만 화가였다. 그래도 단 하나 장차 부인이 될 피아니스트 릴피 스툼프를 만난 것은 음악 덕분이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화가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은 1911년 칸딘스키,프란츠 마르크 등 색채의 표현성을 탐구한 전위 예술가들과 교유하면서부터였다. 특히 1912년 파리에 가서 로베르 들로네와 모리스 드 블라맹크의 작품을 보게 되는데 그들의 대담한 색채 사용에 커다란 자극을 받는다. 1914년의 튀니지 여행은 그의 화가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 됐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북아프리카의 이국적인 자연이 발산하는 빛나는 색채에 매혹된 그는 "색채가 나를 소유했다. 색채와 나는 하나가 됐다"고 선언했다.

    이후 그는 바이올린을 집어던지고 색채 속에 음악적 하모니를 재현했다. 네모꼴의 색채 블록을 병치해 구축한 시각적 이미지는 그대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음표가 됐다. 그것은 자연을 눈과 귀로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이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의 그림이 대중을 매혹한 것은 바로 그 상큼한 색상의 음표가 들려주는 아름다운 멜로디 덕분이었다. 이후 그는 바우하우스와 뒤셀도르프 미술학교 교수로 초빙되지만 나치는 그의 예술을 '퇴폐예술'로 규정하고 유태인으로 몰아세워 탄압한다. 게슈타포가 그의 집을 수색했고 결국 교수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클레는 54번째 생일을 앞두고 자신의 고향 베른으로 돌아간다. 불치병에 걸린 그에게 남겨진 여생은 겨우 7년.그러나 가장 풍요로운 세월을 그는 대자연의 품안에서 보낸다. 작품들은 예전보다 훨씬 단순해졌다. 구체적 형상은 사라지고 굵고 어두운 선들은 가늘고 경쾌한 선으로 대체됐다. 그 사이로 간간이 상형문자와 알 수 없는 비밀의 표지들이 자리를 메웠다. 그것은 마치 치기어린 아이의 그림 같았다. 그것은 대지의 아이로 태어나 이제 막 대지의 품으로 돌아가려는 한 화가가 깨달은 자연의 보이지 않는 원초적 모습이었다.

    클레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고도 베른은 베른 주의 주도이면서 스위스의 수도이기도 하다. 마치 안동 하회마을처럼 아레 강이 구시가를 휘돌아 흐르는 이 고도는 1191년 체링겐 가문의 베르톨트5세에 의해 세워졌다. 왕은 첫 사냥에서 곰을 잡았는데 이를 도시의 이름으로 삼아 '베른'이 됐다고 한다.

    베른은 구시가지 전체가 16세기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구시가는 서쪽 끝의 국철 베른 역으로부터 동쪽의 아레강안까지 고작 1.2㎞에 불과해 도보로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구시가의 중심은 마르크트 거리인데 길 양쪽을 따라 늘어선 건물의 1층은 석조의 아케이드로 갖가지 상점들이 늘어서 있어 구경하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융케른 거리의 우뚝 솟은 후기고딕 양식의 대성당(뮌스터)도 빼놓을 수 없는 관광 포인트다. 100여m의 첨탑 꼭대기에 오르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흰 눈으로 뒤덮인 융프라우와 푸른 숲이 구시가의 붉은 지붕과 상큼한 콘트라스트를 이뤄 클레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그 황홀한 풍경 앞에서 우리는 대자연의 넉넉한 마음을 읽는다. 어지러운 형태와 자극적인 색채로 가득한 빌딩 숲 속에서 잃어버린 마음의 눈으로 말이다. 그런 가운데 마음은 어느 새 "그림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판박이처럼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끔 하는 것"이라던 클레의 마음이 된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끝내 스위스 국적 못가진 역사의 희생자, 파울 클레

    파울 클레는 스위스에서 태어나 스위스에서 타계했지만 실제 그의 국적은 독일이었다. 스위스의 국적법이 속인주의여서 그에겐 독일인이었던 아버지의 국적이 부여됐던 것이다. 사망 1년 전인 1939년 클레는 스위스 정부에 국적 취득 신청을 냈다. 그러나 스위스 정부는 이 현대미술의 거장을 스위스인으로 맞이하길 꺼려했다. 그가 건전한 시민의 양식을 해치는 '퇴폐미술가'라는 이유였다. 그의 국적 승인 여부를 가리기로 결정됐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결정이 이뤄지기 6일 전 유명을 달리했다.

    독일에서도 퇴폐미술가로 낙인 찍혀 유태인이 아니면서도 유태인으로 내몰렸던 클레는 불행한 역사의 희생자가 아닐 수 없다. 베른시는 클레가 타계한 지 65년 만인 2005년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파울 클레 센터를 세웠다. 스위스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파도 형상의 건물은 음악과 미술을 유기적 통합체로 본 클레의 정신을 담은 것이다.

    클레만큼 현대 예술계에 폭넓은 영향을 끼친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의 작품은 회화는 물론 색채학 등 현대 예술계에 다방면으로 흔적을 남겼다.

    음악에 남긴 영향은 특히나 두드러진다. 작곡가 귄터 쉴러는 <파울 클레의 테마에 대한 7개의 습작>을 작곡했고 스페인 작곡가 베네트 카사블랑카는 클레를 기리는 교향곡을 작곡,그에게 헌정했다. 클레의 작품은 독일의 문학비평가 발터 벤야민의 해석학적 텍스트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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