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Story] 영림목재‥日도 가르친 특수목 1인자…국산 자재 개발 첨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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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ah! 히든 챔피언
경영포인트
① 대를 이어 목재가공 41년
② 특수목 발굴과 국산자재 용도 개발
③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경영포인트
① 대를 이어 목재가공 41년
② 특수목 발굴과 국산자재 용도 개발
③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
미국 캐나다 일본 등 선진국은 내장재나 외장재로 원목을 많이 쓴다. 아름답고 환경친화적이기 때문이다. 단풍나무 너도밤나무 삼나무 참나무 호두나무 느티나무 등의 미려한 결은 그 자체가 예술이다. 나무는 오래될수록 진가를 드러낸다.
소득수준이 높아질수록 원목제품 수요가 는다. 바닥은 물론 탁자 서재 등을 원목으로 꾸미면 품격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남동공단의 영림목재는 이런 용도에 쓰이는 특수목을 120가지나 취급하는 업체다. 대다수 목재업체들이 많아야 서너종의 목재를 취급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요즘은 한걸음 나아가 국산자재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달 하순 세계 각지에서 온 목재 관계자 300여명이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영림목재(대표 이경호 · 60)를 찾았다.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중남미 동남아 유럽 등지에서 온 이들은 서울에서 열린 '세계산림과학대회'에 참가한 뒤 산업체 방문 스케줄에 따라 대형버스에 나눠타고 이곳을 방문했다. 이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이들은 탄성을 질렀다. 외관부터 달랐기 때문이다. 5층짜리 사무동 건물 전체가 나무로 뒤덮여 있었다. 비나 눈을 맞아도 썩지 않는 '이페'와 '울링'이라는 나무였다.
공장 안에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무실 계단은 오크목으로 장식돼 있다. 전시장엔 각종 한국산 목재로 만든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5층 대표이사 방에는 거대한 원목 탁자가 있고 인테리어 역시 다양한 수종으로 장식돼 있었다. 옥상의 퍼걸러와 바닥 의자 모두 나무였다. 각국의 관계자들은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가장 많은 질문은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목재를 취급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목재는 공산품이 아니다. 천연재다. 나무에 따라 성질 특성 용도가 다르다. 따라서 목재업체들은 몇가지 수종만 취급하는 게 관례다. 하지만 영림목재는 북양재 남양재에서 아프리카나무 등 많은 나무를 취급하고 있다. 인테리어 가구 물류 악기재 조경재 등으로 쓰이는 120여종의 특수목을 다루다보니 이들이 놀랄 만도 하다.
이는 이경호 대표가 30년 이상 목재업계에 종사하며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개척하고 이를 한국적 기후조건에 맞춰 용도를 개발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열대우림 속에서 나무를 조사하다가 차가 굴러 위험한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캐나다 밴쿠버 프레이저강 상류의 목재를 검사하려다 강속에 빠질 뻔한 일도 있었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 질좋은 목재를 한국으로 들여와 한국 특성에 맞는 재목으로 개발했다. 그래서 '특수목 1인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대표는 1969년 선친이 창업한 회사를 이어받아 1978년부터 회사 경영에 참여했다. 중앙대 경영학과 졸업 후 대우전자와 동양정밀 무역부에서 유럽 수출을 담당하던 중 제재소를 운영하던 부친 이용복씨(작고)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사업을 이어받은 것이다. 이때가 28세였다. 초기에는 샘표식품과 삼립식품에 나무상자를 납품했다. 이후 삼립식품과 삼성전자에 목재 쇼케이스 등을 대량 납품하면서 대표 취임 후 5년 만에 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내에선 생소한 미국 서부지역과 캐나다 동부지역의 고급 활엽수 및 침엽수를 수입,용도에 맞게 가공하는 사업으로 전환했다.
올해로 환갑을 맞은 그의 나무 인생은 32년째다. 목공소 수준의 목재업체를 국내 굴지의 업체로 성장시켰다. 모기업인 영림목재를 비롯해 고급 원목서재가구업체인 이-라이브러리,원목 제재업체인 현경,팰릿 등을 만드는 장연,특수목 업체인 YL 등 5개사를 총괄 운영하고 있다. 전체 종업원은 150명,연간 매출은 약 600억원에 이른다. 그는 목재조합이사장과 한국파렛트컨테이너협회 회장,아세아파렛트시스템연맹 부회장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요즘 국산재 개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캐나다 유럽에서 단풍나무,가문비나무 등 고급 수종인 특수목을 수입해 국내에 공급해 왔으나 이것만으론 부족하다고 판단해 간벌 적령기에 들어선 국산자재 개발에 온힘을 쏟고 있다.
밴쿠버나 시애틀에 가면 각종 침엽수가 하늘을 찌를 듯이 수십미터 높이로 반듯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의 나무들은 상대적으로 키가 작고 지름도 일정하지 않으며 옹이도 많다. 목재를 베어내도 이를 실어나를 임도(林道)가 제대로 닦여있지 않아 운송조차 힘들다.
이 대표는 "그동안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국산 자재의 용도개발에 소홀했다"며 "이제 하나씩 사용처를 찾고 이에 걸맞은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국내에 가장 많이 분포돼 있는 낙엽송을 바닥재 천장재 내장재 등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리기다소나무를 방부처리한 뒤 옹벽,농수로,하상방틀,펜스,벤치용으로 개발했다.
이 대표는 국립산림과학원을 통해 옹벽붕괴를 막는 나무와 강바닥을 파내고 그 밑에 까는 나무틀(호안공사용 목재틀)을 만드는 기법도 이전받았다. 낙엽송 구조재도 공동 개발 중이다. 이 구조재는 섭씨 100도 이상의 고온에서 건조한 뒤 목재주택용이나 난간 데크재 등으로 쓰기 위한 것이다. 국산 자재 활용에 나선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4월 산림사업 유공자로서 산업포장을 받기도 했다. 나무를 심는 사람이나 기관이 아닌,목재 활용업체 대표가 상을 받는 것 자체가 아주 드문 일이다.
이 대표는 "다양한 용도를 개발하면 국산 자재의 사용을 촉진시키고 이를 통해 숲도 차츰 경제림으로 바꿔나갈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앞으론 국내 수종이 백합나무처럼 빨리 자라면서 경제적인 효과가 큰 나무로 점차 바뀌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대표가 이같이 다양한 목재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학구열 덕분이다. 그는 몇년 전 일본 와세다대 대학원에서 연구원 자격으로 1년 동안 목재를 공부했다. 일본은 고급 목재 활용 분야에서 세계 최고를 달린다. 그런 일본에서 그는 기업인과 학계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거꾸로 한수 지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일본 서부 돗토리에서 목재업계 권위자들이 이 대표를 초청해 강연을 들은 것이다. 이 내용은 당시 '아사히신문'에 보도되기도 했다. 이미 30여개국을 수백 차례 방문,새 수종을 찾아내 제품화한 경험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대표는 "현지 기업인들이 큰 관심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일본 수출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목재업계 종사자들은 일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업종 자체가 전통산업인 데다 나무를 깎아 공급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히 새로 개척할 분야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인 듯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다르다. 그는 앉아 있는 스타일이 아니다. 대학생시절에는 외국인으로부터 직접 영어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자 방학 때마다 동두천 미군기지를 찾아 이곳에서 먹고자며 미군들로부터 영어를 배웠다.
이런 성격은 목재사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미국과 캐나다의 로키산맥과 중국의 장백산맥 등을 샅샅이 살펴보고 중남미와 동남아,아프리카의 열대 정글을 누볐다. 이를 통해 최고급 가구재인 과테말라 장미나무,악기재인 미국 연단풍나무,문화재 보수로 쓰이는 홍송,인도산 흑단 등을 국내에 소개했다.
그는 "나무는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고 밝힌다. "30년이 넘도록 이 분야에 종사해 왔지만 이제 겨우 눈을 떴을 뿐"이라고 설명한다. 나무는 종류가 많고 각각의 나무의 용도도 아직 완벽하게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원목을 어떻게 가공해야 갈라짐이나 휨이 줄어드는지 등 연구해야 할 분야가 무척 많다.
그는 충남 당진에 5만8000㎡의 부지를 마련해 팰릿도 하루 1200세트씩 생산하고 있다. 이곳에는 미국 바이킹사로부터 도입한 자동화설비가 설치돼 있다. 강원도 횡성에는 목조주택산업단지를 만들고 있다. 목조건축 10개사가 들어설 총 33만㎡ 규모의 단지 중에서 영림목재는 전체의 4분의 1을 쓰게 된다. 내년 4월 완공 예정인 이 단지의 준비위원장도 맡고 있다. 이 대표는 "이곳에는 전원주택과 다세대주택 등 다양한 목조건축에 필요한 강화목과 구조목 특수목 플로링 조경재 등을 연구 생산하게 된다"며 "아울러 강원도산 목재 사용을 촉진하는 한편 업체 간 공동 기술개발과 마케팅에도 나서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목재만큼 사람에게 좋은 자재는 드믈다"며 "목재업계 종사자들은 어떤 나무가 한국의 기후조건에서 잘 자랄 수 있는지 더욱 연구하고 간벌을 통해 베어낸 나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해야 목재산업이 발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낙훈 중기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