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설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이하 국과위)가 예산권을 갖는 정부기구로 격상된다.

정부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을 마련,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29일 밝혔다. 현 정부 들어 과학기술부가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폐합되며 '과학기술 컨트롤 타워' 부재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상황에서 막강한 권한의 국과위가 출범하면 정부 출연 연구기관 운영방식에 큰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에 따르면 정부는 교육과학기술부 내 30여명의 공무원으로 구성된 현재 국과위 사무국을 교과부로부터 떼어내 100여명 안팎의 민 · 관 전문가가 일하는 부처 규모 조직으로 확대 개편한다. 또 국과위에 연 13조7000억원에 달하는 국가 연구 · 개발(R&D) 자금의 예산 · 기획 · 평가 및 조정권을 부여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다만 예산권의 범위에 대해선 기획재정부 등 일부 부처와 막바지 이견을 조율 중이다.

정부는 교과부 지식경제부로 쪼개진 26개 출연연구원을 국과위 산하로 통합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현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등 13개 출연연구원은 교과부 기초기술연구회 산하에,한국기계연구원 등 13개 출연연구원은 지경부 산하 산업기술연구회로 소속이 갈려 있다. 높은 칸막이 때문에 공동 연구를 통한 시너지를 내기가 힘든 구조다.

정부는 26개 출연연구원 중 기초과학지원연구원 건설기술연구원 생산기술연구원 식품연구원 등 부처 직할로 둘 필요가 있는 곳을 제외하고 모두 국과위 산하 통합 법인으로 이관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또 기능이 중복되는 출연연이나 개별 부처 직속으로 통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기타 국 · 공립연구소를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검토중이다.

정부가 국과위 위상을 올리기로 한 것은 중장기 과학기술정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하고 '중구난방'식 국가 R&D 자금 집행 과정을 투명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르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교과부 장관이 부위원장을 맡는 국과위가 예산배분 방향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자문기구에 불과해 실제로는 집행능력이 없다. 과학기술출연연발전민간위원회(위원장 윤종용)가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27개 부처 · 청에서 추진된 274개 사업은 국과위의 통제를 받지 않고 예산을 저마다 지원받았다. 각 부처가 추진 중인 90여개 중장기 기본계획 중 국과위 심의를 거친 것은 절반에도 미치지 않았다.

임기철 청와대 과학기술비서관은 "유명무실한 국과위 등 전반적 시스템이 부실해 중복투자 등 부작용을 통제할 수단이 없었다"며 "국가 R&D투자의 생산성 향상과 직결되는 문제인 만큼 100년을 대비하는 안목에서 개정안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당초 정부는 출연연발전민간위가 제시한 안을 토대로 각계 의견을 모아 이달 중 과학기술 거버넌스 개편안을 발표하기로 했으나 부처 간 이견이 심해 일정을 연기했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이 민간위 안에 대해 상당 부분 긍정적 입장을 밝히고 과학기술계가 일치된 목소리로 지지하면서 법 개정 논의가 급물살을 타게 됐다.

전략적 기술개발을 통한 국부창출을 위해 국가 R&D 예산의 편성 및 배분권을 일원화하는 것은 이미 세계적 추세다. 정광화 충남대 분석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부 연구기관 구조가 바뀌는 악순환을 이번에는 꼭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