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6일 새벽 중국 방문길에 오름에 따라 평양에 체류 중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그가 김 위원장을 만났는지가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 25일 오후 평양에 도착한 카터 전 대통령은 당일 북한의 명목상 국가원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만난 뒤 6자회담 북한 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 등이 배석한 가운데 만찬을 함께했다고 조선중앙통신 등이 보도했다.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상임위원장과 대담 · 만찬을 한 것은 작년 8월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방북했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행보와는 차이가 있다. 당시 클린턴 전 대통령은 도착 첫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나 1시간15분가량 대화를 나눈 뒤 곧바로 2시간여 만찬행사를 가졌다. 대북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만남을 기정사실로 점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북한 매체는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 간 면담 여부에 대해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다만 조선중앙통신은 26일 0시33분 "김 위원장이 평양시 선교구역의 평양곡산공장을 현지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의 구체적인 시찰 날짜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밤 12시를 넘긴 시간에 보도한 점으로 미뤄 시찰 시기는 25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이 낮 시간대에 공장 시찰을 마치고 밤 12시에 중국으로 출발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카터 전 대통령이 방북 첫날 김 위원장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카터 전 대통령은 북한 땅을 떠날 때까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는 당초 1박2일 일정으로 방북길에 올랐지만 이날 방북 일정을 하루 연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터 전 대통령은 북에 억류된 미국인 아이잘론 말리 곰즈의 석방을 위해 민간 자격으로 방북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승인을 얻고 방북한 만큼 김 위원장과의 회동을 통해 북 · 미 간 간접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카터 전 대통령 역시 천안함사태 이후 대결 국면에 처해 있는 남 · 북 관계와 북 · 미 관계를 풀기 위해 본인의 방북이 필요하다는 판단하에 방북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그가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올 경우 '머쓱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대북 소식통은 카터의 일정 연장과 관련, "카터가 귀국하기 전에 김 위원장을 만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카터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이미 만났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김 위원장의 방중이 비밀리에 이뤄진 만큼 카터 전 대통령 행보의 일부만 언론에 보도되고,짧은 시간 동안 비밀 회동을 통해 한반도 문제 등에 관한 의견을 나눴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이 카터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더라도 그의 방북을 계기로 '중대 결심'을 하고 이를 중국 수뇌부와 논의하기 위해 방중길에 올랐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카터 전 대통령은 김 상임위원장을 통해 '김정일 메시지'를 전달받았을 수도 있다.

장진모 기자 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