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면에선 인도 기업들이 우리보다 20년쯤 뒤처져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의 힘(thinking power)'만큼은 10년 앞서 있을 겁니다. "

인도 최대 가전업체인 비디오콘의 김광로 부회장이 진단한 인도의 장점이다. '생각의 힘'이란 표현에 답이 있다. "21세기엔 인도가 훨씬 유리할 겁니다. 그들은 복잡성을 포용하고,창의성을 키웁니다. 우리에겐 부족한 것들이지요. '단일 민족'이란 관념이 한국의 미래 경쟁력에 장애물이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

김광로 비디오콘 부회장 "인도기업의 생각이 우리보다 10년 앞서"
◆하드 컬처,소프트 컬처

김 부회장에게는 몇 가지 수식어가 늘 따라 붙는다. 1997년부터 LG전자 인도법인장을 맡은 뒤 4년 만에 LG전자를 인도 가전 시장 1위 자리에 끌어올려 'LG전자 인도 신화의 주역'이란 타이틀을 얻었다. 2008년 7월엔 비디오콘의 최고경영자(CEO)로 영입돼 '한국의 CEO 수출 1호'로도 불린다. 비디오콘은 백색가전과 휴대폰 등을 생산,판매해 지난해 40억달러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김 부회장을 25일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났다. 그는 한국무역협회가 인도 진출을 희망하는 중소 기업인을 위해 마련한 강연에서 '인도 경제의 미래'를 주제로 1시간여에 걸쳐 현지 비즈니스에 대한 노하우를 들려줬다.

그는 한국과 인도에 대해 "정반대의 성격을 갖고 있는 나라"라고 말했다. "한국엔 '하드 컬처'가 강합니다. 한 번 목표를 정하면 끝까지 도전해 성취하고,남보다 먼저 결승점에 도달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하지만 늘 이분법적인 사고에 빠져 있고,다른 의견엔 배타적이기도 한 것이 단점이지요. 인도의 기업 문화는 정반대라고 보시면 정확할 겁니다. "

쌍용자동차 인수를 추진하는 마힌드라의 사례가 화제로 떠올랐다. 김 부회장은 '행복한 결말'을 전망했다. "인도에선 인수 · 합병(M&A)을 아주 자연스럽게 봅니다. 국내에선 기술 유출 등 우려의 시각도 많은 것으로 아는데 그건 한국인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입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질적인 문화를 잘 받아들이고,상대방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

인도의 '소프트 컬처'를 잘 이해한다면 쌍용차가 실패의 전철을 밟을 일은 없을 것이란 설명이다. '소프트 컬처'와 관련,김 부회장은 인도의 정치 문화를 예로 들었다. "1년 전쯤 총리 불신임 표결이 있었습니다. 정당이 49개에 달하는 터라 극단적인 대립이 있었지요. 하지만 표결이 끝나자 서로 악수하고 아무일 없던 것처럼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

◆인도의 저력

비디오콘 오너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았을 때 김 부회장에게 맡겨진 역할은 조직 혁신과 품질 개선이었다. 그는 "한국에 소프트 컬처가 부족하듯 인도엔 하드 컬처에 대한 인식이 별로 없다"며 "평가를 도입하고,그에 따른 합리적인 보상을 해 줌으로써 인도 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도 경영인으로서 김 부회장은 인도의 제조업이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도 대부분의 기업이 미국,유럽 대기업 출신의 CEO들을 영입해 선진 기업 문화를 배우고 있고,흡수하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수출 시장으로서 인도는 여전히 매력적"이라면서도 "인도 정부가 제조업 강화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시장은 갈수록 좁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안으로 철저한 현지화를 통한 직접 진출을 제시했다. "굴지의 은행과 몇몇 대기업들도 인도에 진출했다가 금방 문을 닫고 나갔습니다. 말로만 현지화를 얘기했지 실천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인도인들을 무시하면서 동시에 존경받길 원하는 게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이 점이 바뀌어야 성공할 수 있을 겁니다. "

글=박동휘/사진=강은구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