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컨테이너 선사인 AP몰러머스크가 이달 초 1만6000TEU급(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한 개를 실을 수 있는 공간) 컨테이너선을 발주할 것으로 알려지자 세계 조선 · 해운업계는 크게 술렁였다. 규모가 길이 400m,폭 57m로 기존 선박보다 15%가량 크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규모의 경쟁'으로 가는 전조에 불과했다. 이번 입찰에 참여한 조선업체들 대부분이 응찰 서류에 컨테이너선 크기를 1만8000TEU급으로 써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상 최대 규모다.

컨테이너선의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다. 2000년 초 나온 선박의 최대치가 7200TEU급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10년 새 두 배가량 커진 셈이다.

◆탄소배출 이슈가 컨테이너선 규모 키워

글로벌 조선 · 해운업체가 주목하는 것은 '규모의 경쟁'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점이다. 1980년대만 해도 아무리 커봐야 컨테이너선은 4400TEU급 정도였다. 1만TEU 컨테이너선 시대를 연 것도 2000년대 중반께다. 두 배 정도 크기를 키우는데 20년가량의 세월이 필요했다. 국내 1위이자 글로벌 컨테이너 업체 '톱10'에 속하는 한진해운도 지난 6월 국내 업계 처음으로 1만TEU급 컨테이너선을 확보했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중국 CSCL이 2008년 삼성중공업에 1만3300TEU급을 발주하면서 포문을 열었고,머스크도 당시 1만4900TEU급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한술 더 떠 머스크도 이달 말 1만8000TEU급을 발주,연말에 최종 업체를 선정할 계획이다.

머스크가 노리는 것은 뭘까. 경쟁관계에 있는 해운업체들뿐만 아니라 조선업체들도 이 물음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탄소배출 규제에서 해답을 찾는다. 국제해사기구는 앞으로 1~2년 내 선종별 탄소 배출 기준을 제시,기준치를 초과하면 상당한 벌금을 물릴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업체 관계자는 "배의 크기를 1만8000TEU급으로 키우더라도 1만2000TEU급에 쓰던 엔진을 장착하면 전체적인 비용 절감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며 "최고 속도면에선 불리할 수 있지만 정속으로 저속 운항을 하면 동일한 연료를 소비하면서도 커진 선박 규모 덕분에 훨씬 많은 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운사 규모의 경쟁,조선업체 희색

컨테이너선의 규모를 키움으로써 해운업체들은 운임료 주도권이란 또 하나의 카드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조선업체들도 희색이다. 시황 확대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이석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아직까진 컨테이너 시황이 공급 초과 상태이기 때문에 선박 가격이 낮은 편"이라며 "선박 온실가스 규제에 앞서 머스크가 선제 공격을 한 것이고,조만간 컨테이너선사 간의 무제한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싱가포르 선사인 NOL이 대표적 사례다. 대형선 위주로 선단 개편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NOL은 140여 척의 선단 가운데 80%가량을 6000TEU급 이하 중소형 컨테이너선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달 초 1만500TEU급 선박 2척을 대우조선해양에 발주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이 연구원은 "초대형 선박에 다양한 에너지 절감 장치들을 장착할 수 있는 조선소는 현재로선 한국 조선업체뿐"이라며 "친환경 선박 이슈가 전면으로 부상하게 되면 국내 조선사들이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세계 1위 조선 국가로 부상하긴 했지만 올 상반기 기준으로 벌크선이 전체 건조량의 50% 이상을 차지했고,컨테이너선도 대부분 6000TEU급 이하(12%)다. 머스크의 1만8000TEU급 컨테이너선만 해도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 등 국내 조선사 위주로 응찰 자격이 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