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곡물대란 오나] 러 이어 우크라이나도 곡물수출 제한…'식량 무기화' 움직임
글로벌 곡물시장이 기상이변으로 인한 공급 부족 위기에 직면했다. 50년 만에 닥친 흑해 연안 가뭄으로 밀 생산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중동과 아프리카 지역의 식량 공급에 빨간불이 켜졌다.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을 강타한 홍수로 쌀과 면화,팜오일 생산이 타격을 받았다. 1997년 이래 최대 규모의 라니냐 현상으로 인해 올겨울 남반구 곡창지대의 곡물 생산량까지 크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출 제한 나선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17일 올해 말까지 곡물 수출을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인다고 전격 발표했다. 미콜라 프리샤흐뉴크 우크라이나 농업장관은 이날 '식량 안보'를 명분으로 "연말까지 보리와 밀 등 곡물 수출을 현재 항구에서 선적 대기 중인 100만t 외에 250만t까지만 더 허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곡물 수출을 지난해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인테르팍스우크라이나통신은 "구체적인 밀 수출 쿼터도 조만간 결정되고 새 수출 할당량은 내달 1일부터 적용될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는 국내 시장 가격 안정을 위해 밀 수출을 전면 금지한 바 있다. 세계 3~5위 밀 수출국인 러시아 · 우크라이나 · 카자흐스탄의 밀 생산이 최소 20% 이상 줄어들면서 올 6월 이후 글로벌 밀가격은 50% 이상 상승했다. 국제 보리가격도 두 배 이상 껑충 뛰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도미노' 곡물 수출 제한 조치로 흑해 연안 밀 의존도가 높은 중동과 아프리카 수입국들이 당장 큰 충격을 받게 됐다. 우선 러시아산 밀 최대 수입국인 이집트와 우크라이나산 보리 최대 구매고객인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우크라이나산 보리를 가축용 사료로 사용하는 유럽에서는 닭과 돼지를 중심으로 축산물 가격 급등이라는 2차 위협까지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말과 내년 초 수확기를 맞는 남반구 밀 곡창지대에도 먹구름이 잔뜩 끼었다. 칠레 인근 태평양에서 발생한 대형 라니냐(해수 장기 저온 현상)가 연말에 활동이 가장 강해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남반구 주요 경작지에 대규모 가뭄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남미의 곡물 수출 대국 아르헨티나의 밀과 옥수수 콩 생산에 비상이 걸렸고 호주의 밀 농가들도 근심이 깊어졌다. 인도네시아와 브라질 주요 커피 재배 지역에는 홍수가 발생할 것으로 예보됐다.

중국에서는 남부지역에 내린 심각한 폭우와 홍수 피해로 쌀과 면화 수확량이 지역별로 적게는 3~5%,많게는 20~30%가량 감소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

식량 무기화와 투기세력이 변수

이처럼 이상기후로 인한 글로벌 식량위기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곡물 파동이 2년 만에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옹고지 오코뇨 이웨알라 세계은행(WB) 이사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 제한 조치로 쌀 등 주요 곡물가격이 단기간 내 3~4배로 폭등해 방글라데시와 아이티에서 기아 폭동이 발생했던 2007~2008년의 식량위기가 재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주요 곡물 수출국들이 식량을 무기화하고 있는 데다 투기세력이 곡물가격 상승을 주도하는 점도 불안 요인이다. 러시아는 전체 농산물 수출의 절반을 통제하는 무역회사를 설립한 뒤 전격적으로 밀 수출 금지를 발표, 국제가격 폭등을 촉발시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총리는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에도 곡물 수출 중단을 요구하고 있어 도미노 수출 중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함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풀린 시장의 풍부한 유동자금이 상품펀드와 헤지펀드 등으로 유입되면서 농산물 가격의 고공 행진을 부추기는 것도 주요 불안 요인으로 꼽힌다.

반면 2년 전 식량 파동 때와 같은 최악의 상황은 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미국의 밀 재고량이 3000만t으로 2008년에 비해 800만t 더 늘어나는 등 충격을 완화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판단에서다. 세계 최대 농산물 거래 회사인 카길은 "2008년에는 원유값이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들면서 곡물을 바이오 연료 생산에 전용한 탓에 가격 상승폭이 컸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