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가열되고 있는 글로벌 환율 전쟁은 각국의 경기 상황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경기가 회복하는 듯하다가 다시 둔화되는 더블딥 가능성이 높아지자 각국이 환율을 통한 2차 부양책을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1차 부양책이 재정 투입과 통화 공급 등 자국 내 대책이 주(主)였다면 2차 부양책은 대외 대책의 성격이 강하다.

미국은 올 7월까지 추진해왔던 소극적 의미의 출구전략을 포기하고 비상대책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양적완화정책으로 환원했다. 앞으로 주택담보부증권(MBS)의 만기로 받게 되는 원리금을 회수하지 않고 국채를 매입하는 데 씀으로써 유동성을 재공급해 나가겠다는 것이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의도다.

외형상으로는 공개시장 조작 대상이 MBS에서 국채로 바뀐 점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방침이 발표된 이후 미국의 국채수익률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다. 16일(현지시간)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은 연 2.56%로 17개월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주요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알 수 있는 달러 인덱스 지수도 82.37을 기록,8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시장개입이라는 명시적인 형태를 취하지 않더라도 달러 약세 의도를 달성하고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2차 부양책의 일환으로 오바마 정부가 아시아 국가를 대상으로 추진하고 있는 수출진흥책과 맞물려 벌써부터 국제금융시장에선 '총성 없는 환율 전쟁'이 시작됐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한 나라의 통화가치는 경쟁국에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적정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정국이 수출 진작을 이유로 자국의 통화가치를 평가절하할 경우 그 피해가 고스란히 경쟁국에 전가되는 '근린 궁핍화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때 경쟁국이 피해를 막기 위해 자국의 통화를 경쟁적으로 평가절하한다면 환율 전쟁이 발발한다.

이런 의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국 외환당국의 태도다. 올 6월 말 이후 채택한 복수통화바스켓제도로 달러 비중이 종전보다 줄어들었다 하더라도 달러 약세가 진행되는 속에서도 최근 위안화 환율은 8월 FOMC 회의 이전보다 높게 고시됐다. 달러 약세에서는 위안화가 절상돼야 하나 오히려 절하되고 있는 셈이다.

더 주목되는 것은 중국이 미국과의 직접적인 마찰을 피하기 위해 일본의 국채를 대거 사들여 위안화 약세를 도모하는 움직임이다. 엔화 가중치가 높아진 현 복수통화바스켓제도에서는 엔화가 초강세를 보이면 달러 약세에 따른 위안화 강세를 상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금융시장에서 '미스터 엔'으로 불리는 사카키바라 에이스케는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중국이 엔고를 부추겨 일본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출범 이후 엔화 약세정책 표방에도 불구,일본 경제 여건과 의도와 상관없이 진행된 엔화 강세를 그대로 수용해 왔던 간 나오토 정부도 17일 디플레 타개를 위한 부양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앞으로는 엔고 저지를 위해 강력히 시장에 개입할 뜻을 내비쳤다.

최근 들어 주요국들이 자국 통화 약세를 유도하는 것은 2차 부양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남아있는 정책수단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 추진했던 1차 부양책에서는 기준금리를 한꺼번에 서너 단계씩 내리는 '빅 스텝' 금리 인하와 유동성을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하는 양적완화정책,재정 면에서는 '유수정책(pumping-up policy)'을 추진할 만큼 여유가 있었다. 이때 각국 간 협조와 공조가 잘 됐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미국 등 주요국의 기준금리가 '제로'인 데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가 위험수위를 넘어 추가 재정지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다시 악화되고 있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유혹에 쉽게 빠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