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13일 오전 9시20분께 고(故)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의 빈소가 있는 서울 풍납동 아산병원을 찾았다. 이 대통령은 빈소에 30여분간 머물며 김 명예회장의 처조카인 정몽구 현대 · 기아자동차그룹 회장과 장남인 김윤수 한국프랜지 회장 등에게 애도를 표했다.

이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재계 인사의 빈소를 찾아 직접 조문한 것은 과거 끈끈했던 인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김 명예회장이 현대건설 전무로 재직하던 1965년 신입사원으로 입사했다. 김 명예회장은 1976년까지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재직하다 현대중공업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통령은 1975년 현대건설 부사장이 된 뒤 1977년 입사 12년 만에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 대통령과 김 명예회장은 각종 건설공사 현장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1960년대 후반 태국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김 명예회장은 '왕상무' 또는 '왕상'으로 통했다. "고장난 건설 장비도 그가 나타나면 움직였다"고 할 정도로 기계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어서다. 당시 현지법인 경리를 담당하던 이 대통령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현장을 찾았을 때 통역을 맡기도 했다.

1969년 본격화된 경부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선 숱한 난관을 함께 극복한 일화를 갖고 있다. 무엇보다 공사 기일을 맞추기가 힘들었고,공사비도 턱없이 적었다고 한다. 현대건설은 고속도로 공사에 참여한 17개 건설사 중 수익을 낸 몇 안되는 회사 중 하나였다. 상당수 건설회사가 공사 직후 도산했을 정도로 험난한 조건이었다.
김 명예회장은 현대그룹의 창업 공신이다. 덕분에 1970년대 초만 해도 직계가 아닌 사람 중에선 김 명예회장이 유일하게 그룹 내 계열사(금강개발산업)의 대표이사를 맡기도 했다.

정 명예회장은 1980년대 초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과 대한체육회장까지 맡았다. 그룹 일에 전념할 수 없게 되자 건설부문은 이 대통령에게,자동차 · 엔진부문은 김 명예회장에게 각각 맡겼다. 두 사람은 매일 오전 7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열린 그룹 사장단 회의 때마다 만나 머리를 맞댔다.

1987년 정 명예회장이 그룹 총수 자리를 셋째 아우인 정세영 전 현대차 회장에게 넘겨줄 때 이 대통령(현대엔지니어링 · 현대건설)과 김 명예회장(현대중전기 · 현대엔진),정몽구 회장(현대차서비스 · 현대정공)은 각 계열사의 신임 회장으로 취임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